# 코스母스 22화
췌장암에 걸리신 어머니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여전히 커튼 사이로 양 광이 들어와 스멀거렸고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지만, 여전히 힘겨웠던 날이었다.
육신을 떠난 영혼은 오늘도 지각이다.
여전히 부엌에선 왱왱거리는 어머니의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에 돌아온 영혼을 붙들고 축 처진 양팔을 오늘도 흔들거리며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 또 수삼이야!] [어 ~ 이제 일어났니? 오늘도 늦었네... 그러게 일찍 일찍 좀 자야지] [또 그 소리네, 일찍 잤다니까요. 피곤이 쌓여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 알았어. 이거 마시고 얼른 출근해] [예! 씻고 먹을 테니 식탁에 두세요.] 세면장 문을 닫는데 부엌 쪽에서 쿵 하고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세면장에서 내 방으로 가려면 부엌을 지나야 한다.
서둘러 씻고 출근준비를 해야 했던 나는 방으로 발걸음 했고 부엌을 지나는데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옷을 갈아입는데 부엌에서 다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왜 이래 일어나 봐, 정신 차려봐, 어허 이 사람 왜 이래, 이봐]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엄마가 쓰러졌다.] [예!!!] [신경 쓰지 말고 출군 해라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떻게 그래요] [어허 신경 쓰지 말래도 어서 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할 테니 그리 알고 어서 가라] [예 그럼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 주세요.]
나는 출근을 했고 아버지는 구급차를 불러 어머니를 태우고 서둘러 인근 병원으로 가셨다.
응급실에 도착한 아버지는 여전히 의식을 잃고 계신 어머니를 깨워보려고 몸을 이리저리 흔드셨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잠시 후 응급실에서 젊은 의사 선생님께서 보호자를 부르며 달려 나왔고 여기선 안 되겠다며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되겠다며 타고 온 구급차에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를 태웠다.
[무슨 일인데요? 왜 여기서 안 된다는 건가요?] 절규에 가까운 아버지의 물음에도 젊은 의사 선생님은 [자세한 건 그쪽 병원에서 알아보세요 그리고 서두르세요.] 의사 선생님의 “서두르세요”라는 말에 아버지는 다리가 풀려 그만 그 자리에 조져 앉았다.
[보호자님 정신 차리시고 어서 타세요.] 구급차에서 환자이송을 도왔던 의료진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서둘러 차에 태웠다.
그리고 구급차는 부산의 GS 대학병원으로 어머니를 이송했으며, 그곳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하였다.
이미 출근해 있던 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아마 통화 중이거나 정신이 없어 그랬을 거라 짐작만 할 뿐 여전히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도 않았기에 알려하지도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던 나는 반 차 사용 후 서둘러 귀가하고 있었으며, 수시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정작 어머니의 수술소식을 들은 건 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빠! 엄마 수술 중이셔 어디야?]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그런데 어느 병원이니?] [GS 대학병원] [알았다 기다려 정신 바짝 차리고...]
지하철을 빠져나온 나는 서둘러 택시로 바꿔 타고 GS 대학병원으로 달렸다.
택시를 빠져나와 응급실로 들어서는데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서너 번 반복했고 information의 안내원을 통해 수술실 위치를 물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먼저 도착해 있던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모습을 먼저 발견한 김 서방이 [처남] 하며 앞으로 다가섰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을 뚫고 힘겹게 올라온 나의 첫 물음은 [어떻게 됐어?]였다.
하지만 어느 사람도 나의 물음에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쪽 벽에 비스듬히 서 있던 동생이 벽을 등에 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하며 우리 집의 가장 큰 어른인 아버지의 행방을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몰라] 하며 들려주는 분노에 찬 동생의 목소리였다.
그때 큰어머님이 다가서며 [아버지가 많이 놀랐는지 계속 횡설수설하시길래 큰아버지가 데리고 갔는데 아직 안 오시네] 하며 두 분이 함께 계시니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아버지의 행방을 말씀해 주셨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고 선생님의 수술 결과를 듣던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호자님!] 하시며 주의를 집중시킨 의사 선생님의 손에는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 들려있었는데 어머니의 뱃속에서 끄집어낸 조직이라며 보여주셨고 뒤이어 [췌장암 말기입니다.]라고 운을 뗀 선생님은 [일단 수술은 잘됐습니다만 췌장암이라는 것이 워낙 생존율이 낮습니다.] 하며 수술실에서 확인한 어머니의 상태를 알려주셨다.
우리의 시선이 모두 선생님을 향해 있을 때 아버지가 어느새 합류하여 선생님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계셨다.
[그래서 그 사람 살 수 있습니까? 선생님?] 뒤쪽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와 동생 그리고 큰어머님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다시 우리의 시선은 의사 선생님을 향했다.
[환자분이 워낙 전이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불쌍한 사람입니다. 재발 살려주세요.] 하며 아버지가 흐느끼며 이야기하였지만, 선생님은 짧게 한 말씀 더하신 후 뒤돌아 가셨고 우리 가족은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에 목놓아 울었다.
[환자가 저 정도면 아셨을 텐데...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만져진다든가 아니면 아프다던가 어떤 식으로든 증상이 있었을 텐데 아무런 말씀 없었나요?] [.......]
사실 어머니는 제주도 가기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배에서 무언가 만져진다며 가족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고 결국 이런 결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달 전 종합건강검진을 마쳤지만, 그곳에서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야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자 췌장은 별도의 검사를 해야만 한다고 전해 들었다.
일반적인 비의료인은 종합건강검진이면 자신의 건강상태를 모두 검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종합건강검진에서 제외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있고 그런 검사를 하려면 추가비용이 얼마가 발생하니 선택하라고 이야기했다면 지금의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수 있을 텐데 아무런 공지도 하지 않은 종합건강검진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기에 급급했던 병원의 대처가 너무나도 아쉽고 개탄스러웠다.
잠시 후 수술실을 빠져나온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에야 면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원제한 때문에 가족 모두가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먼저 아버지에게 기회를 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선 듯 다가서지 못한 채 나에게 우선권을 넘기셨고 아버지 덕에 어머니를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 들어섰을 때 커튼 너머 어머니의 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한증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손과 발은 촉각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갈라져 있었고 지금 나의 눈에 들어온 어머니의 발 역시 여름 가뭄에 갈라진 논 바닥 마냥 쩍쩍 갈라져 있었다.
커튼을 밀고 들어가 가장 먼저 어머니의 발을 잡은 뒤에야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코에는 보조호흡기를 달고 계셨으며, 꾹 감은 눈 옆으로 길게 이어진 눈물 자국이 고스란히 나의 가슴에 새겨져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풀려버린 파마머리 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여럿 보였다.
무심하게도 그제야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는 죄책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에 죄책감까지 더해지자 손과 함께 목소리도 몹시 떨리고 있었다.
뱃속 밑바닥부터 끌어올려 간신히 내뱉은 [엄마~]라는 한 단어가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축여진 눈꼬리에 길게 늘어진 어머니의 눈물 자국을 손으로 닦아 올리며 다시 한번 [엄마 ~] 하고 불러봤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성사된 후 병실에서 나온 나는 불편한 심경과 함께 미움이 함께 자리했는데, 그렇게 나의 시선을 불편하게 만든 건 아버지의 행동 때문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약주를 드시고 오신 아버지는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한 채 병원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그 모습이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책임감 없는 어른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가장 어른인데 어쩌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야속하다기보다 끔찍하리만큼 미웠다.
누구보다 정신 차리고 수습해야 할 어른이 술에 취해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고 마치 너무 슬퍼 술 없이는 현재의 고통을 참기 힘들다고 합리화하려는 모습 같아 보였다.
그리고 결국 훗날 아버지는 가장의 자리를 나에게 물려주시며, 앞으론 네가 우리 집 가장이다. 그러니 동생 잘 보살피라고 하시며, 당신은 스스로 뒷방 늙은이의 길을 선택하셨다.
[아버지 엄마 보고 오세요.] 하며 아버지에게 다가가자 [오늘은 안보란다 아니 못 보겠다.] 하시며 [엄마는 깨어났니?] 하고 물으셨지만 아니라고 아직은 깨어나지 못했다고 말하자 다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버렸다.
동생과 김 서방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어머니가 모습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을 땐 아버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는?]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며 나가셨어.] [에이 진짜 무슨 어른이 그러냐 아까 눈 풀린 거 봤지!] [그만해라 아버지도 힘드시니 그러겠지!] [힘들긴 뭘 했다고 힘들어 그렇게 만든 거 사실 아빠 아냐?]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해 내 말 맞잖아] [야! 여기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그러니까 그만해] [몰라 난 이제 아빠 안 볼 거야 엄마 잘못되기만 해 아주 가만있지 않을 거야] [감정 추스르고 혹여라도 엄마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지 마라] [아이 진짜 이놈의 집구석] [김 서방 그만 데리고 들어가게 나중에 어머니 깨어나면 연락할 테니 그만 들어가] [처남 그럼 수고해] 동생과 김 서방을 서둘러 보낸 건 아직 어린이집에서 하원하지 못한 채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조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하원시간은 훌쩍 넘었고 동생이 미리 어린이집에 조치해 두었지만 더는 길어지면 양쪽 모두에게 이로워질 게 없음을 알기에 서둘러 보냈지만, 동생은 그리 쫓아내듯 보내버린 나를 한동안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원망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한동안 마취상태를 유지하던 어머니가 깨어난 것은 자정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어느새 집으로 갔던 동생이 김 서방과 잠들어있는 조카를 안고 다시 병원을 찾았고 그 무렵 어머니도 깨어나셨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물을 찾고 계셨지만, 어머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아직 물은 안 돼요 큰 수술 하셨거든요 다른데 불편한 곳은 있나요? 여기 보세요 이거 보이세요?] 담당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와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어머니는 물을 달라는 말 외엔 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보호자 아직 물을 드시면 안 됩니다. 거즈에 물 묻혀서 입이 마르지 않게만 해 주세요.]
갈증을 참기 힘드셨는지 인상을 쓰고 계셨는데 당신의 처진 눈이 더욱 슬퍼 보였다.
거즈에 물을 묻혀 드리자 묻어있던 모든 물을 빨아두셨으며, 한동안 물 말고는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렇게라도 우리 곁에 남아 계시는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말기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은 0%에 가깝다.
의학이 많이 발달한 지금의 수치를 보더라도 5년 생존율 10%~13.9%이다.
수명은 9개월에서 1년 미만이다.
그러니 23년 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이미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더 버텨주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에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고 또 그렇게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감사했으며 고마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가족이 며칠 후면 영원히 당신 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함께하는 매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게 느껴질지 또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충분히 사랑할 것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