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와 사위 그리고 아들

# 코스母스 20화

by 서기선

# 장모와 사위 그리고 아들


양 광이 유난히 따가운 아침이었다.

간밤에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밝은 양 광이 들어왔는데 한동안 발끝에 머물러있던 녀석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더니 어느새 턱밑을 지나 코끝까지 기어 올라왔다.

늘어진 몸을 틀어 애써 피해 보지만 이미 방안 전체를 점령한 양 광의 기세를 물리기엔 너무 늦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육신을 떠난 영혼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던 터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침대 머릿맛에 털썩 주저앉아 달아난 영혼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부엌 쪽에서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축 처진 양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믹서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뭔가를 열심히 갈고 계셨다.

[엄마 뭐 해?] [이제 일어났니? 오늘은 늦었네... 그러게 일찍 일찍 좀 자야지] [일찍 잤어요 피곤이 쌓여서 그런 거지] 짧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어머니가 조금 전 믹서기를 통해 갈고 있던 그것을 컵에 담아 주시며 [이거 마셔] 하시며 흰빛 쌀죽 같은 걸 내미셨다.

[이게 뭐야? 인삼 냄새나는데?] [맞아! 인삼 이번엔 우유 넣고 갈아봤어. 꿀도 조금 넣었으니 맛있을 거 같은데 어때?] 어머니는 나에게 수삼을 자주 사다 주셨다.

출근길에 한 뿌리씩 들고 다니며 먹으라고 주셨다.

그리 받은 수삼을 마치 군것질하는 어린아이 마냥 씹어먹곤 했었다.

하지만 처음엔 잘 받아먹던 내가 지하철에서 그것도 출근길에 인삼 냄새를 풍기는 탓에 주위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어머니의 수삼을 더는 먹지 않겠노라고 반기를 들었었다.

그런 아들에게 어떻게든 당신의 수삼을 먹이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가 이번엔 우유를 넣고 믹서기로 갈아버린 것이었다.

그 덕에 나의 아침을 깨우는 건 알람시계의 따르릉이 아닌 믹서기의 왱왱 거림이었다.

곱게 갈려있던 수삼 한 뿌리를 서둘러 비우고 오래간만 찾아온 휴일을 즐기기 위해 흐느적거리며 되돌아가는데 [어쩌면 엄마 재주도 갈지도 모르겠다.] 하심에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제주도? 거긴 왜요?] [김 서방이 가자고 하던데 아버지가 어떨지 모르겠네] [김 서방이? 김 서방이 왜? 제주도에 아는 지인이라도 있나?] [아니 자기들 신혼여행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하더라고] [뭐? 신혼여행? 아니 애까지 있으면서 무슨 신혼여행?] [걔들 신혼여행 못 갔잖아]

그리고 보니 동생은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

이미 결혼한 지 2년이 다 돼가는데 여태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몇 달 전 조카 동현이가 태어나면서 신혼여행이 한 번 더 뒤로 밀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비단 조카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너무 가진 재산도 없이 시작한 것이라 그간 돈 좀 모아서 가려고 틈틈이 저축했었다.

그리 모은 돈으로 외국여행을 계획했었지만, 유난히 어머니를 따르던 김 서방이 이참에 어머니 아버지하고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반대했었다.

[자기들 신혼여행 가는데 뭐 하러 늙은이들을 데리고 가려는 거야!] [그냥 하는 소리겠지요 신경 쓰지 말아요] [아무튼, 맘에 안 들어 뭐 뻔하지 자기들 놀러 다니는 동안 손자 봐 달라는 거겠지!]

아버지는 여전히 김 서방이 마뜩잖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서방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많이 챙기고 좋아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 서방은 유난히 어머니를 따랐는데, 어떨 때 보면 사위라기보다 아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집에 들러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으며, 간혹 덩치에 맞지 않는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한때 거제도를 대표하는 보디빌더 출신답게 몸집이 컸으며, 덩치와 비교하면 유난히 작은 눈은 어린 시절 용복 이형의 눈 같아 보였다.

[와이셔츠 단춧구멍 키득키득] [처남 뭐라고요?] [어! 아냐 혼잣말이야.] 순간 나도 모르게 용복이 형의 별명을 입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어머니 저 귓밥 좀 파주세요] 김 서방의 커다란 덩치가 벌러덩 자빠지더니 어머니 다리를 베고 누우며 덩치에 맞지 않는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어쩌면 김 서방은 어미 없이 자란 탓에 저런 걸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는가 지금껏 불평불만을 품고 살았는데 세상의 어둠이 모두 내 것인 양 암 올해 했었는데, 김 서방을 보면서 새삼 양친의 건강함이 반가웠다.

어머니는 그런 김 서방의 애교를 따뜻한 당신의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고 김 서방은 그런 어머니를 통해 지난날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모정을 느끼고 있었다.

때마침 방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김 서방의 행동에 한소리 하셨다.

[이 사람 뭐 하나!] [앗! 아버님 오셨어요!] [이 사람 뭐 하느냐고?] 멋쩍어하던 김 서방이 말을 못 하고 있자 어머니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 사람 귀 좀 파주고 있었어요] [그걸 왜 당신이 하느냐고?] [사위는 자식 아니에요? 뭐 그런 걸 물어요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당당함에 기가 눌린 아버지가 [아니 뭐...] 하며 더는 뒷말을 잊지 못하셨다.

[왜! 당신도 파 줘요?] [아냐 나는 됐어.]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죽어산 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순응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김 서방의 제주도제안을 받아들이셨고 그렇게 신혼여행 같은 가족여행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몇 가지 조항을 추가하셨는데 첫째: 따로 다닐 것, 둘째: 아이 맞기지 말 것, 셋째: 경비는 너희가 내라였다.

그렇게 모든 조건을 받아들인 동생이 제주도 예약을 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일주일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제주도여행을 가게 되었다.

처음엔 당신의 감정을 숨기고 계셨던 어머니가 여행 전날이 되자 비로소 실감하셨는지 평소엔 자주 들을 수 없었던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섬마을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를 연신 흥얼거리셨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비행기를 처음 타보신다며 마냥 기대하던 어머니가 홀로 남아있을 내가 신경 쓰이셨는지 방으로 들어오셨다.

“똑똑” [자니?] [아니야 들어오세요.] [뭐 해?] [그냥 있었어요 내일부터 재고점검 기간이라 혹시 밤새워 할 수도 있어서 양말하고 세면도구 좀 챙겨두려고요] [밤새워한다고?] [예 그럴 수도 있다고요 잘 맞으면 금방 끝날 수도 있고 하하 모르지 뭐 내일 봐야 알아요] [무리하지 말고 밥 꼭 챙겨 먹어라] [에이 요즘 누가 밥 굶어가면서 일하나 그렇게 일 시키면 고발당해요 하하하]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잖아 뭣 좀 해두고 갈까?] [에이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엄마나 맘 편히 잘 다녀오세요.] [그래도 어묵이라도 볶아둘까?] [아니에요 먹고 싶으면 내가 해 먹으면 되지 신경 쓰지 마라니까] [네가 어떻게 해? 할 줄 알아?] [뭐레... 와~ 엄마 나 자취할 때 와봤으면서 나도 간단한 건 해 먹을 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드셔봤으면서 새삼스럽게 허허] [하긴 너도 그런 건 아빠 닮아서 잘하긴 하겠다.] [엄마 음식솜씨를 닮아야 하는데 아빠를 닮아서 버렸어. 하하] [아니야 아빠도 요리 잘해] [예 ~ 알아요] 아버지가 처음부터 요리를 잘했던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중국집과 한식집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실력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요리실력을 높게 평가하셨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긴 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요리실력을 식구들을 위해 사용하신 적도 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좋아했었다.

[내 걱정하지 말고 재미나게 놀다 오세요.] [그래 밥 꼭 챙겨 먹어라] [아이고 알았다고요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런 걱정을 하셔]

어미 눈에 자식은 이미 다 자라서 흰 수염이 자라도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고 했다.

지난날 당신이 없으면 밥이라도 굶을까 걱정하시던 어머니처럼, 매일 같은 길을 가는데도 차 조심하라고 이야기하시던 부모님처럼 말이다.

어느덧 내가 자라 해병대를 전역한 아들에게 시간 되면 밥 챙겨 먹어라. 저녁에는 일찍 좀 자라, 차조심하라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있는 내 모습이 지난날 여행 전 자식 밥 굶을까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님께서 방문을 나가려다 다시 뒤돌아보며 [그런 데 있잖아] 하며 다시 말을 걸어왔다.

장난기가 발동한 엄마가 또다시 말을 걸었을 것으로 생각한 나는 퉁명스럽게 [예~ 또 뭐요] 하며 귀찮다는 듯 응수하였지만, 어머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가르치며 [여기 좀 만져봐 뭔가 만져지지 않아?] 하셨지만, 여전히 장난이라 판단한 나는 [똥이야 똥 엄마 얼른 화장실 가세요.] 하며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그렇게 장난스럽게 등을 밀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던 그 일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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