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랑

# 현장에서 벌어지는 요양보호사의 실제 사례 10

by 서기선

잘못된 사랑


무기력하고 무료한 삶은 생활패턴마저 바꿔 버린다.

오래전 나의 삶 속 어딘가에서 그랬던 경험이 있다.

당장 내일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을 때 마냥 쉬고 싶어 하루종일 한 평도 되지 않는 침대밖을 벗어나지 않았던 그때 지쳤으니 좀 쉬어도 된다고 합리화해 가며 그리 살던 한때의 나 남들은 백수라고 불렀지만 취준생이라며 어떻게든 그들의 잣대에서 벗어나보려 발버둥 쳤던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경험했던 일이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활패턴이 바꿨다.

남들 자야 할 때 깨어나 있고 남들 일 할 때 잠자고 이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P 할머님의 집을 찾아갔을 때 할머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점심식사 후 새로 생긴 커피숍에서 커피도 한잔하고 근처 공원에 잠시 앉아 계절을 한껏 느낀 후였지만 할머님은 바뀌어버린 패턴을 충실히 이행하고 계신 듯 보였다.

[요즘 어머님이 낮잠을 자주 주무세요 새벽엔 늘 TV 보시고 밤, 낮이 바뀌신 거 같아요]

[무료하니 그러시겠지요 뭐든 소일거리 같은 걸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소일거리 라면 어떤 걸...] [뭐든요 낮에 할 수 있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지 않을까요?]

가족요양을 하시는 선생님이자 보호자인 따님의 시선이 허공을 날아다니다 다시금 센터장과 마주했다.

[모르겠어요 센터장님이 추천 좀 해주세요]

잠시 고민하던 센터장이 집 근처 1000냥 마트 사장님의 부업하시던 모습을 생각해 냈다.

[혹시 마늘 까는 건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마늘이요? 먹는... 그 마늘?] [맞아요 그게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저희 집 근처에 부업으로 마늘 까는 일을 하시는 분이 계세요 자그마한 마트 사장님인데 낮에 손님 기다리는 시간에 마늘 까는 부업을 하시더라고요 혹시 어머님이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부업을 시키라는 말인가요?] [부업이 목적은 아니지요 낮에 저리 낮잠을 주무시니 일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해서요] [83 먹은 노인네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세요 안 돼요]

단호히 거절하는 보호자겸 선생님의 어조가 날카로웠다.

방법을 제시했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에 승부욕을 느낀 센터장이 다시 본인의 주장에 근거를 붙여가며 보호자 선생님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파지 줍고 다니시는 어르신들 자주 보시지요?] [그럼! 어머니에게 파지 주우라는 말씀인가요!]

선생님은 목소리에 짜증을 섞어가며 댓 구 하였다.

[선생님! 저 아직 이야기 중인데 그렇게 반응을 보이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언제 어머님에게 파지 주우라고 했나요? 왜 그러시죠? 이야기하지 말까요?]

격양된 센터장의 말에 한발 물러선 보호자 선생님의 들숨과 날숨의 소리가 드렸다.

[아니에요] [파지 주우시는 분들이 모두 가난해서 용돈벌이로 그런 일을 하시는 게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운동삼아 하시기도 하거든요] [예 계속하세요] [제 말은 어머님이 저리 낮에 계속 주무시면 밤엔 얼마나 외롭겠어요 남들 다 자는데... TV 보는 것 말고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왜요? 무슨 일 있나요?] [어머니가 자꾸 아버지를 꼬집어요 저녁에] [그래요?! 혹시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TV 보는데 주무시니 화가 났을 수도 있고...]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정확한 건 아니니 판단 내리지는 맙시다. 호호]

잠시 이야기를 멈췄던 센터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부업을 했던 적이 있어요 오래전에... 그때 옆집에 홀어머님과 함께 사는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그 집 며느리가... 그러니까 새댁 이겠지요...]

센터장의 말에 흥미를 느낀 보호자 선생님의 상체가 어느새 센터장 쪽으로 바짝 붙어있다.

[새댁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부업 좀 할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 것을 좀 나눠주면서 물었지요] [뭐라고요?] [뭐 별건 아니고 이런 걸 할 수 있냐고 물었어요. 젊은 새댁이니까요]

[아 ~ 그래서요?] [새댁이 시어머니하고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부탁하더라고요 뭐 그래서 해줬어요]

다소 퉁명스러워진 센터장의 말에도 보호자가 관심을 이어갔다.

[젊은 사람이 해봐야 얼마나 하려고? 그랬는데... 생각보다 잘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더욱 적극적으로 하셨답니다.] [힘드셨을 텐데...] [그러다 그 집 시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어 물어봤지요. 힘들지 않냐고] [그랬더니 뭐라던가요?] [괜찮다고 그러지요 호호 그런데 뒤에 하시는 말씀이 소일거리 삼아 하는 거지 시간 때울 겸 해서... 안 그럼 하루종일 뭐 해 TV나 보겠지 다리가 아파 어디 나다니지도 못하는데 이런 거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하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하실 수 있을까요?] [돈 벌라는 게 아니잖아요 무료한 시간을 때울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주자는 거죠 거기에 보상이 따르면 더욱 재미있어하지 않을까요?]

상담 후 돌아오는 길에 센터장에게 물었다.

[당신 요즘 말 많이 늘었다.] [왜? 어땠는데?] [예전 같으면 듣고만 있던 사람이 요즘 보면 자기주장을 제법 잘 정리해서 말하고 뭐 좋아 보이네] [치 실업 긴 당신만 날 인정하지 않는 거야] [아니야 인정한다고 인정해! 그런데 그 집 어떻게 될 것 같아?] [아마 하게 될 거야] [어떻게 확신해?] [경험이지!] [그럼 하는 게 좋은 거야?] [나쁘다고 할 수 없지] [그런데 왜? 그런 걸 권한 거야? 그것도 경험이야?]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 잘해주면 마냥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는 것이지 저 집은 보호자 선생님이 문제야! 평생 자식 뒷바라지 하며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그러잖아! 생각해 봐 식사 때마다 식사 준비하고 치우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사람인데 하루아침에 식사며 청소며 뭐든 보호자가 다 할 테니 마냥 쉬라고 하잖아! 본인은 어머니를 위한다고 하겠지만 글쎄... 그것이 진정 어머니를 위하는 길일까?]

유대인의 속담에 "물고기를 한 마리 주면 하루를 살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일생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P 할머님의 보호자 선생님은 지금껏 물고리를 잡아주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서로가 힘든 결정을 한 샘이다.

매일 잡아야 하는 본인도 받고만 있어야 하는 할머니도 모두가 피해자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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