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자질
요양보호사의 자질
업무수행일지를 작성하다 문득 SL 어르신이 생각났다.
주차요금 때문에 시비가 있었던 오전의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파트와는 다르게 일반주택은 주차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대로변의 집들은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나 골목 안쪽은 사정이 다르다.
대로변 주택은 집 앞에 주차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안쪽은 가능성조차 없기 때문이다.
SL 어르신은 일반주택 골목 안에 거주하신다.
한참을 돌아 3 급지 노상주차장에 주차하였다.
굳이 주변의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은 건 비용 때문이다.
일반주차장은 30분에 1,000원의 요금을 받지만 3 급지 주차자은 시간당 100원을 받는다.
몇 번만 반복하면 그윽한 향이 일품인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잔 먹을 수 있을 만큼 쌓이게 되니 몇 걸음의 수고 따위는 감수해야 한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벌써 저녁에 수거해갈 분리된 쓰레기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먼저 반겼다.
[어르신 계세요?] [누고?] [저예요! 안녕하셨어요?] [아~ 삼촌이가! 들어오너라]
잠시 고개를 틀어 나의 존재만 확인하시고 시선을 돌리셨다.
뭐 하세요?라는 물음에 마치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 양 [응~ 뜨개질한다] 무심한 말투에는 어떠한 감정도 섞지 않으셨다.
80을 훌쩍 넘기신 어르신의 손놀림치고는 제법 빠른 손놀림을 하고 계셨다.
[와~! 어머니 잘하신다. 뭐 만드시는데요?] [암 것도 아이다.]
계속되는 질문이 귀찮으셨는지 더는 묻지 말라고 하는 듯했다.
묻는 말에 여전히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생각했다.
빨래를 계고 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잠시 눈치를 보시더니 [아드님 스웨터 만드신대요] 하며 눈을 찡긋하셨다.
[와~ 그래서 감색으로 하셨구나! 감색은 남자들이 무난해서 잘 입는 색이잖아요. 어머님 센스 있으시다.]
그제야 어머님께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쁘제?] [예 색상 예쁘네요 아드님 좋아하시겠어요] [우리 아~가 감색 좋아한다.]
[어머님 그런 것도 하실 수 있었어요? 멋지다!] [아이다.! 야가 알려준기다!]
삐죽이 내민 턱이 요양보호사 선생님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에요! 어머님께서 본래부터 하실 수 있었어요! 저는 무늬 넣는 것만 알려 드렸어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스함이 섞여 있다.
관리한다는 게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해봤다.
관리? 내가 뭘? 누구를? 의문이 남았다.
너무 잘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가정에선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이 있다.
혹시 길을 잃거나 정신을 내려놓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그런 걱정들 때문에 치매라는 노인성 질환의 병은 환대받지 못한다.
완치되면 좋으련만 현존하는 의학으로는 무리다.
그러나 더디 오게는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화투를 치거나 계산을 하는 행위처럼 두뇌를 열심히 자극하는 것이 그것이다.
SL 어르신도 치매를 앓고 계신다.
하지만 평소 타인과의 어울림을 힘들어하신 탓에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만날 수 있는 노인정에도 가시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런 어머님을 늘 ~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 요양보호사 선생님 덕에 조금의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뜨개질을 권하셨고 무료하기만 했던 SL 어르신의 삶에도 생기가 돋아났다.
완벽한 조화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이전의 삶은 온종일 TV를 보시는 것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셨던 어르신이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목표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 뜨개질에 소질 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새로운 뜨개질 기술이 한몫한 것이다.
조금 더 예쁜 스웨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일까 어르신의 배움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그 덕에 지속적인 두뇌 활동을 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되려면 아니 조금 더 잘하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수급자 혹은 대상자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고 어떤 것이 부족하고 필요한가를 간파하셔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바라본 요양보호사 선생님 중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09시에 시작해 11시에 마치는 선생님은 당연히 오후에 수급자 어르신이 식사하실 수 있도록 밥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 퇴근 후 식사를 하실 수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있었던 실제 사례이다.
화가 잔뜩 난 보호자가 요양보호사 교체를 주문하셨고 이유가 그것이었다.
밥이 없어 점심을 굶으셨고, 자녀가 와서야 저녁 식사를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선생님은 해 먹으면 되지 왜? 굶느냐며 애써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두둔하고 나서는 분도 계신다.
그런 분에게 한소리 하고 싶다.
[선생님! 생각 좀 하고 말씀하세요! 해 먹을 수 있는데 왜! 굶으셨겠어요. 입에서 나온다고 모두 말은 아닙니다.]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그런 말 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럴 때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무책임한 편들기를 하니 말이다.
빨라진 SL 어르신의 손놀림에 탄복하여 물었다.
[어르신 큰 아드님 거예요 작은 아드님 거예요?] [둘 다 해줘야지]
이제 한 뼘 남짓 만들어졌지만, 마음만은 이미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듯했다.
어머님의 스웨터는 지금도 바삐 달리고 계시겠지?
모니터 너머로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