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IMF 금융위기가 오기 전, 1990년대 초중반 정도로 기억이 된다.
필자의 아버지께서 부장 승진심사에서 탈락을 하셨다. 한 번도 승진 과정에서 미끄러져 보신 적이 없던 분이어서 그랬는지, 탈락의 충격이 꽤 오랫동안 있으셨고, 아버지의 승진 탈락 상황이 우리 가족의 분위기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었다. 탈락 후 몇 주의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이직을 하시겠다고 깜짝 발표를 하셨다. 이직할 회사에서 부장 직급에, 연봉도 상당히 인상해 준다고... 물론 회사의 규모는 그 당시 필자의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회사보다는 작고, 전혀 다른 이업종의 회사였다. [참고로 필자의 아버지는 한 회사에서만 41년을 근속하셨고, 41년 내내 인사/노무 관련 업무를 수행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며칠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고, 결국 아버지는 이직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셨다. 다행히 그다음 해 아버지는 부장으로 승진을 하셨다. 승진 발표가 난 뒤 맞이한 첫 번째 주말에 가장 핫 했던 'XX가든'에 가서 갈비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XX가든'갈비를 정말 원 없이 양껏 먹었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승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을 했다. 승진은 아버지 한 분만의 중대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중대사라고! 아버지의 승진 여부가 고교생이었던 필자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검증되진 않았지만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학습 몰입과 성적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Job Korea가 직장인 1,057명을 대상으로 '승진제도' 관련 설문을 실시한 결과(2017년 9월 6일 자 뉴스)를 살펴보면,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중 1/4(24.9%) 정도가 승진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항목으로 '근속년수'라고 응답을 하였다. (2위로 선택된 항목은 '능력'으로 23.7%의 응답률을 나타냈다.) 근속년수(연공)가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Seniority Base(연공 중심)의 인사제도가 여전히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본다.]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니까. 하지만, 기업들이 '성과'를 HR의 주요 기준으로 설정하였는데 '연공'이라는 기준은 왠지 '성과'와 상반된 개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반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그 결과와 상관없이 승진자가 선발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필자가 일하는 회사에서 2018년도에 수행 한 프로젝트의 EOS(Employee Opinion Survey, 임직원 설문 조사) 결과 중 '승진'과 관련된 부분의 데이터를 내부 시스템을 통해 추출을 해 보았다. [해당 EOS 데이터를 보실 때 감안해야 할 부분은, 프로젝트를 의뢰한 고객사들은 당시 인사 제도의 문제점들이 존재하다 보니 컨설팅을 의뢰하게 된 것이고, 진단 시 제도의 신뢰도나 운영의 만족도가 일반적으로 낮게 나오는 경향이 존재한다.]
필자의 회사가 수행한 프로젝트의 EOS Database에서 '승진'영역의 주요 질문 문항 결과를 살펴보니, 직장인들은 승진이 여전히 중요한 동기부여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운영되고 있는 승진제도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는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내가 겪었던 단상들, 그리고 컨설팅을 하면서 느끼는 현장의 목소리들을 놓고 볼 때, 승진은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인 동기부여 수단'이지만 승진이라는 'Process의 Black Box'라던지, 승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공정하게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승진제도 운영 Process이다.
승진 Process는 인사제도의 영역 중 가장 심플하게 제도 설계 및 운영을 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다. [물론, 승진자 T/O를 설정하기 위해 중장기 사업전략을 기반으로 한 중장기 인력운영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맞는 사업군/직군 별 인력 동인(動因) 모델을 개발하고, 질과 양을 동시에 고려한 인력 구조를 수립하는 것 / 승진 심사 시 개인의 상위 역량 보유 여부를 검증하는 심사 방식을 설계하는 것 등은 '심플'한 일은 아니다.]
위에 Process 중 Step 2 승진 후보자를 선정하는 방식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99%) 없다고 본다. [필자가 볼 때 국내 기업 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승진후보자 선정 방식은 '승진 포인트제'이다.]
최근 고객사의 '승진심사(Process 중 Step 3)'에 필자가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승진 심사 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해진 절차와 판단기준에 따라 토의가 이루어지고 의사 결정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단계인 Step 4의 CEO 조정권 및 확정 부분에 있어서도 CEO 조정 범위를 크지 않게 두기 때문에 이 부분도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렇게만 보면, 승진 공정(工程, Process)이 공정(公正, Equity)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왜 많은 직장인들은 여전히 승진 공정(工程, Process)이 공정(公正, Equity) 하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승진 Process가 공정하게 운영되기 위한 핵심 성공요인이 승진 Process 안에 없기 때문이다.
좀 오래된 컨설팅 자료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평가등급 분석 자료를 보여주겠다. 실제 필자가 15년 전쯤 수행했던 국내 굴지의 기업 인사제도 진단 결과 중 평가등급 변화 추이 관련 내용이다.
해당 분석 자료를 보신 소감은 어떤가?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기업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 아님 우리 기업에서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유효한 이야기인가?
승진을 앞둔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등급을 부여하고, 승진을 막 했거나, 저 연차 인력들에게 낮은 평가등급을 부여하고...'평가 품앗이'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냥 암묵적으로 이번엔 '부런치' 과장이 승진해야 할 차례이니 '부런치' 과장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띠링 띠링~안녕하세요 이순재입니다.] 높은 평가등급을 부여해서 승진이 유리해지게 하는 관행이 존재하였었다. 하지만 이 관행의 질주에 약간의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성과주의 인사제도' 도입 확산이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핵심은 평가와 보상의 연계 강화였다.
'높은 평가 등급 = 높은 기본급 인상 & 높은 성과급', '낮은 평가 등급 = 낮은 기본급 인상 & 낮은 성과급'의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평가자들이 과거처럼 함부로(?) 평가결과를 임의 조정할 수 있는 Room이 줄어들게 된 것이었다. '성과주의 인사제도'가 도입이 되면서 위에서 이야기 한 '승진자 밀어주기'가 사라지게 된 것인가?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일정 부분 감소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승진자 밀어주기'는 존재하고 그 방법이 보다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Case'는 어느 특정 기업의 사례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
대한전자 브랜드 전략팀의 연초 목표 설정 상황이다. 해당 팀의 '이치밀' 팀장은 직원들과의 목표 설정에 대한 사전 준비를 마치고 팀원과 1:1 면담을 통해 2019년 목표를 Setting 해 나간다.
[Case 1 : 최근 승진을 한 브랜드 전략팀 '김한국' 과장의 연초 목표 설정]
2019년 초 과장으로 승진한 '김한국'과장의 목표를 설정할 때, 상대적으로 난이도 높은 업무의 부여,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업무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도전적인 목표를 부여하고 합의함 --> 이치밀 팀장은 김한국 과장과의 목표 수립 면담 과정에서 아마도 '과장으로 승진 한 첫 해이고, 회사가 그만큼 기대를 갖고 승진을 시킨 만큼 보다 도전적인 목표를 가지고 업무에 임해 달라'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Case 2 : 최근 승진 심사에서 승진이 누락된 브랜드 전략팀 '박민국' 과장의 연초 목표 설정]
2019년 초 차장 승진 심사에서 누락된 '박민국'과장의 목표를 설정할 때,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업무의 부여,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업무들에 대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부여하고 합의함 --> 이치밀 팀장은 박민국 과장과의 목표 수립 면담 과정에서 아마도 '올해는 승진을 꼭 해야 하는 만큼, 제시된 목표를 잘 달성해서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위의 Case를 놓고 볼 때, '승진자 밀어주기'관행은 예전처럼 대 놓고 이루어지지 않지만,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평가 Process 내 평가자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서, 그리고 제3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직장인에게 중요한 '승진'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제대로 된 '평가제도의 운영'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누적된 평가결과를 통해 '승진 후보자'가 언제 되는지, 누적된 평가결과가 승진심사 과정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회사에서 최근 몇 년간 수행한 컨설팅 프로젝트 중 HR 제도 영역에서는 단연 '평가제도 고도화' 작업에 대한 고객사의 요청이 많았었다. 평가제도는 기업의 인사제도 운영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제도이며, 공정성/수용성 이슈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평가제도에 대한 Detail은 필자가 별도의 글로 다룰 예정이다.]
평가가 보다 더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기업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평가제도 자체의 공정성/수용성 확보를 위해 절대평가, 다면평가, Peer Group Review, OKR(Objective & Key Result), Keyword 방식의 도입, 지속적인 평가자 교육을 통한 평가자의 역할 인식 및 공정한 평가 프로세스 운영 유도, 평가자의 평가결과 분석을 통한 평가 공정성 위반 여부 확인 등이 국내 선도 기업들이 많이 도입/운영하고 있는 방식들이다.
이 중에서 필자의 개인적 생각은 '평가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가제도의 제도적 보완도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평가자' 스스로가 공정한 평가제도를 운영해 나간다는 생각 없이는 어떠한 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제도적 변화 + 평가자의 변화)들이 자리를 잡아간다면 승진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invisible side'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직장인들이 '우리 회사의 승진제도는 정말 공정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회에 걸쳐서 '직장인에게 승진이란' 글을 브런치에 연재를 하였다. '직장인에게 승진이란' 글 1편이 다음 '직장 IN'섹션 Main에 소개되어, 무려 1만 view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필자는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을 했었다.]
필자가 '직장인에게 승진이란'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직장인들에게 '승진'이란 제도가 어떤 의미이며 이렇게 중요한 '승진'을 기업 그리고 승진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자들이 현재 우리 회사의 승진제도를 한번 되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승진 중심의 인사제도'의 운영이 아닌 '회사와 구성원이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인사제도'의 운영체제로의 전환을 기업과 직장을 다니는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필자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보다 큰 책임감을 가지고 다음 글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필자는 다음 글로 '밀레니얼 세대에 맞는 인사관리'에 대한 내용과 요즘 Hot Issue로 급부상하고 있는 '애자일(Agile)'에 관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다음 글을 브런치에 올리도록 하겠다.
2019년 3월 6일 수요일 Consultant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