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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Mar 28. 2017

마지막까지는 가능성이기에.

글 8

나의 글쓰기 마무리는 마지막 문장이 아닌 제목을 적어내는 것으로 완성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가장 마지막에 제목을 짓는다. 또한 그 이유가 제각각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제목을 짓는 행위는 그 글만의 고유한 자아를 부여해 세상에 내보내는 의식 같은 것이다. 제목을 붙이기 전까지 이 글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마지막 온 점 같은 제목이 찍어지면. 허공에 떠다니던 글자들의 보편성이 그것들을 관통하는 개별성으로 묶어지고, 그 글은 더 이상 가능성(Possibillity)이 아닌 정체성(Identity)이다. 그렇게 독립적인 존재로 종이 위에 승화된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그때그때 부유하는 생각들을 종이 뜰채로 떠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어느 생각들은 잘 떠져서 쉽게 준비해 놓지만, 어느 것들은 종이가 찢어져 실패한다. 그렇게 머릿속에 잡아둔 것들로 요리하여 내어 놓는다. 그렇기에 나는 요리명을 먼저 말하지 못한다. 물론 나에게도 몇 개의 그럴듯한 레시피가 있기에 쉽게 뚝딱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뻔하고 정형화된 것이기에 조리한다기보다는 조립한다고 부르고 싶다. 글은 음식과 달리 완벽한 기호품이기에 이런 부분에서 더 까다롭고 더 조심스럽다.


삶은 어떠한가. 까다롭고 조심스럽기는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부류는 목표를 찍고 건설해가는 인생이 있는 반면, 어느 부류는 살아가다 비로소 여정의 끝에서 제목을 적어낸다. 물론 전자와 후자 모두 목표와 미래의 청사진을 들고 시작하겠지만 여정의 마지막에 도착해야, 비로소 그 생을 관통하는 제목을 적어낼 수 있다. 따라서 사는 동안은 가능성의 연속이기에 비록 지금 서있는 곳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남들보다 불행해 보이고, 힘들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가능성 즉, 희망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지치고 힘들어도 아직은 마지막이 아니기에 주저앉은 그대와 내게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빌려 다시 나아갈 힘을 주고 싶다. 


그대여, 너와 나, 미생들이여. 일어서자 그리고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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