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준 Apr 20. 2018

안녕, 나는 잘 지내_

난필. 1

 의식의 흐름이 시간을 따라잡지 못한다. 초점이 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이어지다 멈춤(pause) 혹은 끝. 요새는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별은 항상 무언가를 가져가고 빈 것들로 빈 곳을 가득 채운다. 결핍, 결여 혹은 부재. 공허한 단어들은 빈틈없이 나를 채워버린다. 그럼 늘 그렇듯 무거운 이별은 가벼운 글로 뱉어낸다.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지낸다. 보다 가벼운 것들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감싸는 막이 된다. 약간의 미소, 가벼운 농담들, 살짝의 제스처까지. 타인과의 마찰과 낮동안의 밝음, 그 속에서 적절하게 소비되는 부유물들. 중력보다 가벼운 의식은 시간을 먼저 보내며, 그렇게 나는 잘 지낸다.


 보다 무거운 것들은 내면에 침전한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너의 온도, 입모양만 남아있는 너의 목소리, 쓰디쓴 이별통보까지. 한 꺼풀 벗겨진 나는 군중 속을 나와 어두운 곳의 나와 마주 본다. 취기를 빌려, 연기에 태워 조금씩 조금씩 휘발시킨다. 희고 뿌연 것들이 날 감싸고돌다 사라진다. 보이지 않기에 그런 기분이기에, 아마 나는 잘 지내는 것 같다.


  가장 밑바닥엔 희미한 것들만이 남아 그리 중요치 않기에 정리하_

지 못한다. 그때의 선명했던 나 그리고. 선명한 너, 의 자리. 꼭 보내야 할 것들을 꼭 붙잡고 놓_

지 못한다. 방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그 방법조차 알고 싶지 않거나. 그저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는 책임 없는 말만 되뇌며, 우두커니 서서 바랜 것들을 바라보다, 네 생각이 문득 난다. 안녕, 나는 잘 지내_

               .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까지는 가능성이기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