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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May 17. 2018

비 오는 날과 수면안대, 상태 #2

난필. 3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은 무언가 끄적여야 잠이 올 것 같은 날이다.


비가 오는 날.

네 체온이 사라진 침대 위에서 나는 웅크린다.

퀸 사이즈 침대 위 웅크린 나 그리고 검은색 수면안대 하나.

네가 두고 간 것인지 버린 것인지 모르는 이 안대(eye patch) 하나가 나를 그때로 돌아가게 한다. 현실감 없는 현실보다는 선명한 꿈이 더 나으니. 차라리 나에게 빛조차 들지 않는 검디 검은 꿈을 씌어주고 그 속에서 나는 행복을 말하겠다. 네가 떠난 빈 구멍을 메우는 유일한 이 조각(patch)을 선물이라 말하겠다.

 

비가 오는 날.

검은 창 밖으로 뿌옇게 이는 물안개가 막연한 것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 피어오르는 것들이 도로 위 차들을, 거리 옆 가로등을, 선명한 것들을 부정하며 섞어버린다. 이미 끝난 결과 그리고 기다림과 희망, 두 경계를 섞어버린다. 나는 그렇게 물안개 속에 잠겨 누워있다. 멀리서 내리던 비는 어느새 눈밑에서 이어지고, 이내 감정의 틈 구석구석을 흐른다. 그 한기에 몸서리 처질 때 다시 한번 혼자임을 실감한다. 나는 아직 비어버린 곳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무기력하게 침전한다. 다행히 검은 하늘이 그 수면 위를 덮는 안대가 되어주니 오늘 하루도 그저 꿈속에서 살 수 있다. 그걸로 됐다.


비가 오는 날.

방을 정리한다. 이젠 낯선 내게 익숙해져야 할 때이나 아직 내가 손을 놓지 못하니,

수면안대에 베인 네 자취들이 사라져 가고, 꿈이 흐려갈 때쯤.

같이 보냈던 비 오는 날 만큼의 비가 모든 흔적들을 씻어 버릴 때쯤.

잡았던 네 손의 온기가 낯설 어 질 때쯤. 그제야 비로소 너를 보낼 때려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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