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필. 13
모두가 외롭다는 사실은 모두를 덜 외롭게 한다. 각자의 개별적 외로움들이 작은 보편성으로 화학 작용할 때, 서로를 스쳐 지나가듯 공명하며 채워지지 않는 위로를 건네받는다. 이는 각자의 결여에 대한 상호보완적인 작용이라기보다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을 재인식하는 과정이다. 즉, 결여에 대한 이해는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줄 답을 주는 일이 아닌 질문하는 교환 작용이다.
종종 우리는 결핍의 원인을 외부로부터 찾는 실수를 하게 된다. 그 오해의 순간부터 우리는 감정에 등수를 매기게 된다. 수평의 개별적 외로움들이 수직의 불행을 생산하고 이 속에서 찾는 행복조차 등급을 갖는다. 각자의 외로움을 타인이 정한 기준으로 답을 찾는 일은 아무 데나 묻어둔 타임캡슐을 찾는 일처럼 희망적이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헤매는 일상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아무렇게나 받아 든 보편적 위안으로 온전함을 증거 하려 하지만 목적지가 없는 그럴듯한 여행은 결국 방황일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수식어가 많은 위로일수록 가장 적은 위안을 준다. 가볍고 부피가 큰 위로에 우리는 또다시 속는 중이다. 가난한 나의 영혼은 생의 가장 절박한 장면에서 충분한 외로움을 탕진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가장 정확하게 내면의 감정들과 대면하게 된다. 결핍이 주는 아름다움은 잃어버린 일부분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다시 조각을 찾아 헤매게 하는 것이 아닐까. 불행하게도 결핍은 실격된 인간을 다시 한번 끌어올린다. 외로움으로 결핍들을 정직하게 폭로할 때 나는 보다 온전해진다.
모두의 외로움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