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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Mar 07. 2020

Ordinary days,

난필. 12

 흐린 날과 맑은 날, 바람 부는 날들은 내 기분과 관계없이 하루를 충분히 채워간다. 흰색 혹은 검은색의 두 가지 표정뿐인 거리는 오늘도 또 하나의 소품이 되어 가고, 그 속의 나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오브제일 뿐이다. 하늘이 높아질수록 그 아찔함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내 땅을 바라본다. 흘러가는 사람들 속에서 몸부림치지만 나 역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이미 집 안 한쪽 벽면 가득히 보통의 나날들이 못 박혀 있다. 한 손에는 같은 하루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또 하나의 '보통의 날'을 걸어둘 자리에 못질할 테고, 그 옆 책장 안에 차라투스트라는 웃지 못한 채 조용히 고개를 흔들겠지. 벽걸이 시계의 검정 시계침은 같은 자릴 빙빙 돌겠지. 니힐리즘(nihilism).


 가끔 이제 사용하지 않는 빈 터널을 혼자 걷는 기분이 든다. '6 피트 아래'로 내려가는 터널은 단말마마저 아득한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열 걸음 채 못 떼고 멈춰 서서 가까워지지 않는 곳을 하염없이 본다. 암순응을 한 두 눈에 새겨지는 것들은 밝게 봐줘도 회백색이다. 다들 그런 채로 산다고 합리화하지만 일상이 주는 압박감에 눈이 풀린다. 그럴 때면 아득해지고 간신히 숨 쉬는 법만 잊지 않는다. 엉킬 대로 엉킨 하루들에 가위질할 용기가 없어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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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메모장 위엔 '오늘은'이란 세 글자만 남아있다. '오늘은' 그 이후는 어떻게 쓸 것인지 하는 고민보다 문득, 이대로 공책을 접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무척 슬플 거란 깨닮음에 무작정 달력을 펴 아무 날에 아무렇게나 동그라미를 쳤다. '다른' 날들이 필요하다. 무채색의 날들을 칠할 새로운 물감을 담을 용기, 그런 마음이 필요했다. 마음속 갖고 있는 백가지 질문들이 정답이 아니라 그저 답이 필요했을 뿐이다. 오늘은 어때라는 물음에 '유채꽃이야'라는 답변을 해주고 말 테다. 오늘은 확실하게 유채꽃 같은 하루다.




Today is no ordinar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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