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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Feb 23. 2020

내 두 번째 서랍.

글 10

나를 속이면서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법은 아직 알지 못하기에 사과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이 글이 그전의 글을 부정하게 되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고백하건대, 이미 파란(波瀾, Blue)은 분리할 수 없는 나의 색의 되어버렸다. 삶은 나를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데려가 버렸고 납치된 글들이 보여주는 감정선은 이미 어느 지점을 넘어가 있었기에, 그곳으로 가지 않을 방법이 없다. 무겁게 흐르는 것들이 내 서투른 강령을 짓밟으며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같이 주저앉아 우는 일밖에 없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글을 쓰자'라니 얼마나 오만했던가. 내 밝음이 모든 어두운 곳을 비출 수 있다 생각한 어린 날의 치기였다고 무색한 변명을 해본다. 맑고 투명하게 물들일 수채화를 보여주려 그렸지만 속은 덧칠할수록 어두워져 가는 팔레트였고 붓을 든 팔조차 낙엽처럼 떨어진다. 이제 이 얼룩덜룩한 팔레트를 보여주며 실토한다. 긍정적 글 뒤에 그보다 더 많은 슬픔이 있었음을, 슬픔이 아름다운 카펫 위로 보이는 작은 얼룩 같은 것이 아니라 행복이 까만 밤하늘 위에 가끔 보이는 별 같은 것이라 말하겠다.


이제 나는 이전과 다른 층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명확하게 보이던 그때의 것들은 선명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항상 그렇다. 무언가를 받으면 반드시 어느 일부분은 상실하게 되고, 각자가 갖고 있는 양팔 저울은 작은 깨달음의 무게마저 예리하게 측정하여 빈틈없이 균형을 맞춘다. 문제들을 얻을 때마다 반대편에 시간의 저울추를 올렸고, 잔인하리만큼 정직한 저울은 시간의 무게만큼 정확하게 날 들어 올렸다. 온몸으로 겪은 후에야 비로소 그 무게를 실감한다.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 다른 것(Something Different)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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