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필. 11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고 고장 났다는 것을 확신할 때마다 새로운 포장지를 찾는다.
상처 나고 찢긴 내용물이야 나만 알고 있으면 될 것이다. 남들이 찾은 모습으로 나를 감춘다.
점점 내가 아닌 나와의 괴리감에 몸서리치지만, 그저 꽃샘추위 때문이라는 위로로 또 한 겹 덮어버린다.
그들이 찾는 나는 여기 없지만 끝내 들키지 않으려 또 다른 포장지를 두른다.
흠난 곳을 찾기 위한 눈길들 속 번듯한 포장지로 감추는 일은 결국 상품성을 위한 것이라,
멍든 사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개별성을 이해하기 쉬운 보편성으로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이내 포기하게 된다. 공허함, 그 빈 곳들을 관계들로 채워보려 하지만.
결국 따스한 것들은 포장지에 막혀 다 흘러내려갈 뿐이다.
남은 것은 번듯한 포장지 속 볼 수 없는 곳까지 끌어내려진 내용물과
그것을 끌어안고 끝내 누구도 원치 않는 무언가가 되어 침전하고 있는 뒷모습뿐이다.
조금은 바뀌어 가고 있는 시대에 나 홀로 클리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