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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Feb 15. 2020

봄내리는 비

난필. 10

봄이 내렸다. 아니 비가 내렸다. 아니 네가 내렸다.

뒤에 찾아올 까끌까끌한 것들이 걱정되지만,

눈물이 나더라도 눈 감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스쳐갈 때까지 기다려야지.


떠났던 그날 아침 공기는 여지없이 찾아들고, 무의식에 숨겨둔 각인들이 온몸에서 반응한다.

어쩌지 못하는 계절의 반복은 때마다 찾아오는 알람시계처럼 울린다.

반응하지 않으려 깊은 곳으로 침전한다. 체념과 인내는 숨 쉬는 것만큼 쉽다.


늘 의도와 실행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기에.

너를 보러 갈 준비를 한다. 머리를 감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신발을 신으려 현관에 주저앉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돌아선다.

그렇게 몇 번의 의도적인 실패로 실행을 체념 곁에 묶어 둔다.


시시콜콜한 것들은 그대로 두더라도, 앞을 봐야지.

노란 먼지 속 피어나는 노란 것들과, 그 너머의 것들을 봐야지.

선인장처럼 온통 가시가 박혀있는 마음을 봐야지.

뿌연 것들에 갇혀 점멸하는 눈동자에 

멍청하게 노란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나는 울어야지.



그렇게 나는 물 없이 표류하다, 감정을 천천히 소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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