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필. 14
늘 타는 버스는 항상 일정하게 같은 곳을 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번 다른 걱정들이 피어납니다. 버스에 가만히 앉아 다가오는 정류장을 바라보다 문득 내려야 하는 곳보다 더 멀리 가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이번 정류장은 지나갑니다. 이런 일탈은 머리가 아닌 마음의 문제이기에 작은 용기를 내봅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알지만 고무줄 탄성만큼의 여유로 몇 정류장 더 가봅니다. 너무 멀리 가면 끊어져 버릴 테니.
모험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가만히 앉아 나에게 꼭 맞는 정류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제법 설레기까지 합니다. 풍경이 낯선 곳에서 내려야겠습니다. 창밖으로 별처럼 떨어지는 햇살이 너무 좋아서 울고 싶어집니다. 기분 좋은 날의 슬픔은 일상을 더 낯설고 새롭게 해 줄 테니까요. 오늘은 버스에서 글이 잘 써지네요. 이번 작업실은 마음에 듭니다.
몇 개의 정류장이 흘러가고 삑 소리와 함께 버스 안의 풍경이 여러 번 전환됩니다. 버스가 가벼워질수록 정류장은 무거워지고, 돌아갈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가봐야 할 세상은 좁아집니다. 그렇게 낯선 곳에 내려 지도를 켜보니 정말 작은 생활입니다. 멀리 온 것 같은 거리도 더 높은 곳에서 본다면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안 되고, 일상으로 돌아갈 버스는 스무 대가 넘게 남았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니 일상 속에서 아등바등했던 것들이 작게 느껴집니다.
걱정들만 보인다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떨어져 보세요. 넓게 본다면 걱정들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일 테니까요. 고민이 마음을 꽉 채우고 있다면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게 좋겠습니다. 마음이 좀 더 넉넉해지면 담겨있던 것들의 공간이 여유로워질 테니까요. 익숙한 정류장을 흘려보내 보세요. 제법 낯설고 새로운 곳에 도착할 거예요.
아무래도 일상을 배반하는 편이 일상생활에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