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피타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준 Jul 31. 2016

내 서랍.

글 5. 흰 종이를 검은색으로 물들여라 - 모파상

문득 글이 어렵다. 쏟아내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수록 그 것들이 뒤섞여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결과물은 더 조악해진다. 글이 싫어지고 무서워진다. 학기가 시작하고 바빠지더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정도는 글을 쓰리라 다짐했건만 엉망이다. 마음도 몸도 글조차도.


마음도 몸도 지쳐서 정적이고 싶을 때면 우울함이 고개를 든다. 그 우울함이 마음을 얼룩덜룩 물들일 것을 알면서도, 마치 세이렌(Seiren)의 노래처럼 끌려간다. 그러고는 마음을 온통 우울함으로 가득 채운다. 조용한 곳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한 바탕 울고 싶어 진다.


지금의 나는 껍데기다. 무엇이든 생산해야겠다는 무의식적 목표만 있을 뿐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마음의 울릴 여력도 없다. 변명이겠다만, 이렇게 지쳐있을 때면 쓰고 있는 글들이 파란(波瀾 또는 Blue 둘 다)을 그려간다. 의도치 않은 색을 띤다. 글을 쓸 때 그 무엇이든 개의치 않지만 꼭 지키는, 이를테면 글쓰기 강령 같은 것이 하나 있다면 '긍정적인 글을  쓰자'이다. 글로써 상처받은 그대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그런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다만 안 그래도 힘든 그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함께 둘러앉아 서로를 토닥이고 싶다.




서랍장에 이 글을 간직한지 어느새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고 다시 밝은 하늘이 보이고, 공책 위로 덮혀있던 그림자를 걷어내고 다시 흰 종이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싶은 충동이 들면. 다시 시간은 흐른다. 하늘의 구름도 흘러가고 선선한 바람 한 줄기에 괜스레 마음이 울렁인다. 다시 글을 쓰려는 마음이 연분홍색으로 설렌다. 처음 글쓰던 곳과 환경도, 사람도, 계절도 다른 이 곳에서 다시 글을 이어보려고 한다.


여기는 호주 시드니.

어느 한적한 카페.

7월의 마지막 날.

다시 청춘일상.



La Perouse, Sydney.





매거진의 이전글 훌훌히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