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필. 20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준비할 때를 느낀다.
겨울 끝에서 다시 시작 선을 이어 붙인다.
첫 번째 겨울 속에서 두 번째 눈 시린 풍경을 본다.
갈림길 위에 서서 한쪽으로 쓰러질 준비.
남아있는 길을 혼자 걸어갈 준비.
다치지 않을 다짐, 하지만
눈 내린 길 위로
발자국을 흘린다.
짧은 눈꽃이 피고 지고,
그 뒤에 올 환한 벚꽃을 기다리는 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일 텐데,
가장 어려운 것은.
소리가 나지 않게 발버둥 치고,
보이지 않는 마른 자국을 닦고,
입술과 코를 막고,
천천히 가라앉는 그 요란스러움으로
내가 나를 돌아보길.
어차피,
체온은 기억보다 빨리 식고,
기억은 감정보다 빨리 마르고,
감정은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니까.
차라리, 시간을 기다리기.
네가 내게 물들기를 바라기보다
네게 물든 나를 체념하는 게
나의 겨울 준비.
밤하늘 위에 핀, 벚꽃 같은 눈꽃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