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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4. 희진의 회상과 영란

 한산한 토요일이다. 모처럼 친정 식구들과 저녁 약속이 되어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 사무실 문을 닫고 나섰다. 외할머니 생신이라도 딸아이가 편지와 선물을 준비했다. 나도 쳉기지 못하는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게 나보다 낫다. 오빠네 가족이 먼저 도착해서 조카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북적거리는 소란함이 좋다. 


 엄마의 생신 날. 온 가족이 모여 케이크 앞에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케이크가 먹고 싶은지 케이크에 불을 붙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불협화음의 생일축하곡.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생일 축하합니다!” 

 엄마는 또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괜스레 나도 따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멋진 노래 불러줘서 고맙단다! 이제는 할머니 소리가 자연스러울 만큼 익숙하구나.   가끔은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나? 정신없게 살다 보니 지금이야.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은 게 신기해.”

 “진짜, 우리 엄마. 꽃다운 시절 일만 하느라 너무 고생 많았어! 건강하고 즐겁게만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굵은 손마디를 보면 그녀의 인생의 굴곡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여전사다.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그녀의 삶은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어리석게도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죄송해요. 제가 어려서 몰랐던 것 같아요. 엄마가 힘들게 살았던 걸 어른이라서 당연하다고 외면했어요.'          

 장인어른이 커피를 마시다 어렵게 이야기를 건넨다. 

 “박서방, 희진이와 통화하다가 우연찮게 이야기를 들었다네.”

 “네? 장인어른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요즘 경매에 관심이 있다지? 그리고 물건 낙찰도 받았다면서? 축하하네.  나는 그때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가지고 재테크는 전혀 몰랐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구먼.”

 희진이가 경매 낙찰받았다고 장인께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조금 쑥스러웠다. 

 “요즘은 유튜브라는 게 잘 되어있어요. 경매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있고요. 장인어른 시대에는 경매라는 걸 알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맘만 먹으면 쉽게 배울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한 번만에 권리 분석한 금액이 낙찰될 줄은 예상 못했거든요. 소신지원이 이때 쓰는 말인 거 같아요. 하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하는 말 그냥 흘려만 듣게나. 자네에게 오지랖 넓은 부탁 하나만 하고 싶어서 그러네.”

 동우는 조용한 편이신 장인어른이 먼저 말도 건네고 부탁까지 한다고 하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자네가 이 경매 건으로 인해 돈을 벌었을 테지. 이윤을 조금 적게 남긴다 생각하고 거주자의 이사비와 최소한 한 달치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지원해줬으면 하네. 그게 부담이라 생각 들면 나에게 말을 하게. 모아둔 비상금이 조금 있어.”

 “장인어른. 저도 이사비는 어느 정도 챙겨드려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네는 그럴 거라 생각했네. 혹시 희진이에게 이야기 들은 바 없나?”

 “희진이가 그러더라고요. 낙찰된 집에 갈 때 같이 가자고요. 저희 아이들과 비슷한 연령대 자녀들이 있고, 그 아버지는 사업으로 힘든지 집에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자녀들과 엄마만 있다고 해서 저 혼자 불쑥 찾아가기에는 좀 불편하다 싶긴 했어요.”

 “그런가? 희진이가 같이 간다고 그랬다고? 희진이의 마음을 조금 알 거 같아서 가슴이 아프군. 내가 딱 자네만 한 나이였던 거 같아. 내가 참 어리석게도 사람을 쉽게 믿다 보니 부동산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 그 사람이 희진이 할머니 죽마고우였거든. 나도 워낙 어릴 적부터 보아온 사이라 아무런 의심도 없었어. 알고 보니 희진이 할머니 친구가 무리하게 집을 짓다가 힘든 상황이었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야. 그게 지금 생각하면 부동산 이중계약 이었던 거 같아. 우린 부동산에 대해서  너무 몰랐고, 그 사람을 안일하게 믿었지. 그리고 부동산에서 같이 한 편이 되었는데 당연하게 믿었지. 그 사람은 자격증도 없는 중개인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말이야.”

 장인어른의 모습에서 깊은 회한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겪어 보지 않았기에 선뜻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희진이 할머니야 그렇다고 쳐도, 내가 어느 정도만 알아봤었더라도. 후회를 해도 늦었다는 걸 알지만 그때부터 우리 집 상황들은 모든 것이 변했지. 희진이 엄마도 그 일로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라네. 그날 이후로 나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에 숨 쉬는 것 도 버겁네 느껴지더군. 일말의 희망도 없는 삶이라 생각했는데  그때를 견디고 나니 이런 오늘날이 있어. 여하튼 희진이를 잘 부탁하네.”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장인어른의 고해성사에 나의 멘털은 잠시 흔들렸다.   

  

 혼자서 버는 월급으로는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도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을 때였다. 남준이가 어느 날 집을 샀다고 집들이에 오라고 했다. “동우야, 너도 경매 한번 알아봐. 우리 같은 월급쟁이가 돈 주고 집 사는 게 어디 싶냐?” 그 말에 쫄깃 해서 경매 공부를 시작했다. 남준이가 권하는 책과 유부트 강의도 꾸준히 들었다. 경매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권리분석 잘 만하면 괜찮은 물권을 좋은 시세로 살 수 있다.

 어느 날도 마찬가지로 퇴근 후에 경매 책과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동우 씨는 경매를 왜 하려고 그래?”

 “우리 회사에 친하게 지내는 동기 남준이 있잖아. 기억하지? 집들이 갔을 때 그 아파트를 경매로 시세보다 싸게 샀거든. 완전 돈 벌었지. 그래서 또 하나 물권 보고 있는 중이래. 월급은 생활비로 나가고, 경매 한 차익금으로 돈도 모으고 하더라고. 우리 같은 월급쟁이야 월급만 받아서는 생활 유지만 겨우 하고 있으니깐. 지금이야 우리 아이들이 어리지만  조금만 더 커서 중학교만 가도 학원비가 달라져. 뭐라도 해봐야지 안 그래?”

 “그래. 남준 씨가 산 집이 경매로 한 거구나. 그리고 나도 애들 엄마야 혼자서만 무거운 책임지지 말았으면 좋겠어. 경매든 뭐든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희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희진이네가 부동산 사기를 당한 줄은 몰랐다. 그냥 어렴풋하게 희진이 어릴 때 장인어른이 믿었던 할머니 친구 분한테 사기를 당해서 장모님도 함께 빚을 갚느라 일만 하셨다고 알았다. 경매에 관련한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모르고 말이다. 희진에게는 힘들게 지나쳐왔던 잊고 싶은 사건들이 나로 하여금 그 기억들이 강제소환 당하고 있었다. 깊은 한숨이 쉬어진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그 일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매로 끝이 났다.      




  얼마 전부터 동우는 퇴근하자마자 책을 펼치고 유튜브 강의를 듣고 있다. 퇴근 후 서점을 들려서 집으로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면 집에 경매 관련 책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직장 동기 남준 씨가 경매로 집을 샀다더니 아무래도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우연찮게 강의도 같이 들어봤다. 유투버들의 재치 있는 말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게 된 연유도 부동산을 몰라서 당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경매 관련 유투버 강의를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된다. 요즘 같은 세상이면 예전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겠단 생각이 든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등기부등본을 열람할 수 없었다. 계약하기 전 등기부등본으로 소유주만 정확하게 확인했더라면 사기당할 일은 없을 건데...... 동네 복덕방에서 할머니 친구분과 작정하고 사문서 위조로 매도자를 확인시켜 주는데 어느 누가 그걸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도 매도자가 할머니의 친한 친구라는데 말이다. 그냥 그렇구나 믿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인터넷만 되면 그 자리에서 등기부등본을 뗄 수 있었다면 상황은 또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전 재산을 잃었던 우리 부모님은 경찰서도 가고 어디든 닥치는 대로 억울함을 호소하셨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기당하는 사람이 무지해서였단다. 그걸 그렇게 간단하게 믿었냐면서. 사기를 친 사람보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의 잘못이 큰 세상이었다. 그 일로 우리 가족은 한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가끔씩 엄마는 밤에 혼자서 조용히 우셨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희진아, 잘 생각해 봐. 바닥에 실수로 지갑을 떨어뜨려 분실한 사람이 있어. 지갑을  떨어뜨린 사람은 잘못이 있을까? 없을까?”

 “그 질문은 보행자가 파란불에 건너야 할까? 빨간불에 건너야 할까? 답이 나오는 질문 같은데.”

 “희진아, 보편적으로 내 소유가 아닌 지갑을 주운 건 명백히 범죄지. 하지만 그전에 지갑의 주인이 무책임하게 지갑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사람들마다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라 생각이 든다. 점점 나이가 들다 보니 문득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이런 비슷한 상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가 많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때론 누군가가 정확하게 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때 부모님들이 무지해서 사기당한 거 본인들 잘못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알려주고 싶다. 하늘의 별이 된 할머니도 그리고 부모님도 본인들 잘못이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다. 과거에 뒤돌아 후회하는 사이 다른 이들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며칠 동안 권리분석 하던 물건을  간발의 차로 낙찰을 받은 것이다.

 “동우 씨, 경매 낙찰받은 물건 언제 한번 가볼 거야?”

 “안 그래도 내가 먼저 말 꺼내려고 했었는데. 혹시 시간 있을 때 같이 가볼래?”

 “그럼 그때 나랑 같이 가. 자녀들도 있다며? 초등학생이라고 했었지? 예민한 시기에 상처받을지도 몰라. 오전에 연락 한번 드리고 가자.”

 “아... 그 생각을 못했어. 그쪽 집에 애들 없을 때 가는 게 맞겠다. 근데 그 사모님 내 전화를 잘 안 받으셔서 문자라도 남겨두고 가야겠어.”

 “동우 씨, 전화할 때 공손히 전화해 드려. 문자도 그렇고. 심리적으로 불안할 거야. 남편분이 사업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돈이 회수가 안 됐다고 했었지? 자녀가 있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는 않아.”


 어느 날 남편이 경매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의 감정들이 옅어져서 하는 말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경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매를 통해서 채권자는 채권을 회수해야 할 테고, 채무자는 채무를 줄여야 하니깐. 경매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무실에서 책상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김소장님, 안녕하세요. 저 영란이에요. 기억하시죠?”

 “어머, 영란 씨.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사한 집 적응은 마쳤죠?.”

 영란 씨는 올 초에 집을 매수한 매수자이다. 맛있는 빵도 사 오셨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는지 그동안 인상도 둥글둥글 해지셨다. 첫 만남을 떠올리면 영란 씨는 고슴도치 같았다. 날카로운 털이 바짝 서있어서 말 한마디 한마디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셨다. 성격인가 하기에는 그 예민함이 지나치다 느껴졌다. 당연히 조심스러웠고 영란 씨에게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부동산 사무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김소장님, 혹시나 내일 시간 되시면 저랑 다른 부동산에 같이 좀 가줄 수 있나요? 

 밤새 고민해 봤는데, 제가 부탁할 때가 소장님밖에 없어요.”

 무슨 일인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따뜻한 차를 우려내고 차를 한잔 드렸다.

 “소장님이 건네시는 차만큼 따뜻한 차는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저 부동산 그만두면 사랑방 하나 차리고 싶네요. 그때도 오실 거죠?”

 “당연합니다. 저한테 이야기 안 해주시면 섭섭할 거예요.”

 “일단 영란 씨 이야기 한번 해보세요. 무슨 일이시죠?”

 영란 씨 성격에 내게 부탁을 한다면 정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분을 어느 정도 아는 내가 거절할 생각은 없었고, 이야기는 일단 들어봐야겠다. 


 “제가 예전에도 부동산 사무실 방문하면서 이야기드렸었죠? 이런 말 하면 부끄러운데요. 한 때는 제가 잘 나가는 의류 가게 사장이었어요. 직원들도 10명이 넘었고요.  나이 들어서 돈 걱정하면서 살 꺼라고는 생각도 안 했던 시절들이 있어요. 그때 지인이 소개해 준 그 부동산 업자만 안 만났더라면 제 삶은 지금처럼 이러지는 않았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지인도 한 편이었을 거 같아요. 연락은 되지도 않지만요.” 

  영란의 말에 희진은 고개를 조용히 끄떡인다.

 “그 집을 계약하고 잔금을 치를 때쯤 문제가 생긴 거예요. 계약금을 많이 걸어야 한다는 말에 있는 돈을 꽤 많이 넣고요. 그 집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잔금 할 때는 매도자가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돈 날리는 것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 등기 친 집이에요. 그 뒤로 남편 하고도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스트레스로 건강도 잃었어요. 결국엔 사업까지 접어야 했어요.”

 그때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영란 씨가 떠올렸다. 눈앞에서 등기부등본이며 서류며 하나같이 꼼꼼하게 확인시켜줬고, 몇 번이나 되물으며 질문했지만 한결같이 그 답들을 해드렸었다. 

 문제가 많았던 그 집을 다시 내어놓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업자가 나타난 것이다. 드디어 기회라고 생각한 영란 씨는 계약을 한 것이다. 

 “그때는 그 집에만 나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업자가 주변 동네 사람들 한 테 제 이야기 들었나 봐요. 집 팔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걸요. 알고 보니 저희 집 주변으로 시설이 들어와서 개발이 된다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계약서를 쓰러 나오라고 재촉하는데 무서워서 잠도 못 자겠어요. 저랑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 계약서 작성은 안 했으니깐 소장님이 가시면 저 바보같이 당하지만은 않을 거 같아요.”

 영란 씨 얼굴이 너무 지쳐 보였다. 그 얼굴에 순간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사정은 딱하고 안쓰럽다. 그렇다고 다른 부동산에 부동산 소장이라며 일일이 간섭하고 따지려고 드니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고민을 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영란 씨, 제가 내일 계약서 쓰러 같이 가드릴게요. 대신 저를 편하게 조카 희진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이모라고 할게요.”

 “진짜요? 고맙습니다. 김소장님이 같이 가주신다고 하니 제가 눈물이 날 거 같아요. 부동산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요. 예전에 부동산 사기당해서 힘들었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밤에 잠을 자다 깨요. 소장님께서 알아서 계약서 잘 봐주실 거니깐 안심하고 돌아갈게요. 내일 봬요.”

 “네, 영란 씨 내일 봐요. 오늘은 걱정하지 말고 좋은 꿈 꾸세요.”

 위축되어 있던 영란 씨의 어깨가 조금은 펴진 거 같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운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은 걱정 없이 잘 사는데 말이다. 


 영란 씨와의 약속대로 그다음 날 나는 모처럼 청바지를 꺼내 입고 편한 면티를 입었다. 영란 씨가 귓속말을 내게 속삭인다. “소장님이 옆에 있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영란 씨의 떨리는 손을 살포시 잡아드렸다.

 순간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몰려온다. 엄마가 영란 씨의 모습에 겹쳐 보였다. 부동산에 대한 일말의 지식이 없었던 엄마의 곁에 또 다른 ‘희진’이가 있어줬더라면면. 지금처럼 어느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그 계약은 아닌 거 같다고 한 번만 살펴줬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이야기해 주고 싶다.      

 무지개 부동산이 아닌 다른 부동산 문을 나서면서 영란 씨와 손을 맞잡았다.

 “영란 씨,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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