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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5. 재개발의 어둠

 희진이는 주택 생활이 꽤 만족스럽다. 1층에는 희진이네가 2층은 시부모님께서 거주하고 계신다. 다들 주변에서 반대도 했었다.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살아가다 보니 아이들 키울 때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둘째 은영이가 태어나고 나서 시부모님이 정환이를 봐주시니 육아로 인한 부담이 훨씬 덜 했다. 

 아파트에 거주할 때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운이 좋게도 아래층 노부부는 “아이들은 뛰면서 크는 거예요. 하나도 안 시끄러워요.”라고 말은 해주셨지만 내심 죄송스럽다. 잠귀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 들린다고 했었는데, 집안에서 뛰어다닐 때마다 혼나는 정환이도 안쓰러웠다. 

 우린 ‘캥거루족’이 되었다. 기존에 살던 집을 월세로 돌렸다. 그 돈으로 담보 대출의 이자를 충당하고도 생활에 조금의 보탬이 된다. 여러모로 이득인 셈이다. 주택에 살면 불편한 점도 있지만 1층에서 정환이가 물놀이도 하고  제약 없이 편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희진은 시부모님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가난했던 시절 일 하느라 바빠서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손자 손녀들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우린 나름대로 순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주택에 살면서 습관이 하나 있다. 일기예보를 보고 빨래를 한다. 오늘 같은 햇살 좋은 날 빨래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따가운 햇살 아래 빨래는 뽀송뽀송하게 잘 마를 거다. 빨래에서 나는 햇살 향이 있다. 그건 아는 사람만 안다. 옥상이라는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있다. ‘무지개공인중개소를 한번 찾아볼까?’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멀지 않은 곳에 도로 건너편으로 내 사무실 어딘가가 보인다. 건물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대충 저쯤 어딘가 일 거다. 그냥 피식 웃으며 기지개 한번 펴고 동네 미용실이나 들렸다가 출근해야지 마음먹는다. 

    

 동네가 제법 어수선하다. 여기저기 플랜 현수막이 걸려있다.

 < 경‘정비구역 지정 동의율 87% 달성’ 축 >

 동네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조합이 결성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사업의 속도가 제법 빠르다. 미용실 가는 길에 동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보게 되는데 모두들 같은 화젯거리다. 감정평가 금액에 대한 이야기와 우린 로또 2등쯤 당첨된 거 아니냐라는 소리다. 부동산을 하다 보니 들어도 대충 아는 이야기라 귓가에 더 잘 들어온다. 아는 만큼 더 피곤해지는 순간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행복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 원장님은 남편을 일찍 보내고 아이들 셋을 키우시는 분이다. 이제 막내가 대학생이 되어서 걱정거리는 줄었다고 좋아하셨는데 재개발로 다시 걱정거리가 생기셨다. 

 “희진 씨, 인생은 걱정거리 없으면 재미가 없다더니만 또 신경 쓸 일이 생겼어. 오늘은 파마할 거라고 했지? 사무실에는 늦게 출근해도 괜찮아? 요즘은 바쁘지 않아?”

 “네. 오전 시간에는 괜찮아요. 화요일 오전은 조용한 편이고요. 머리 이쁘게 말아주세요. 저는 아가씨 때는 몰랐거든요. 아줌마들이 왜 파마를 뽀글뽀글하게 하는지. 근데 애 둘 되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어요!”

 “희진 씨 나이에 벌써 그런 말 하면 되나? 대충 무슨 말하는지 알겠는데. 이유나 들어보자 말해봐~”

 “파마를 뽀글뽀글하게 하면 미용실 2번 갈 거를 1번 가게 되고요. 파마를 하니 머리  손이 덜 가서 편해요. 저는 이제 옛날처럼 긴 머리 못할 거 같아요.”

 “내가 희진 씨 머리 일 년 동안 미용실 안 오게 파마 제대로 한번 해줄까?”

 “하하하. 원장님. 저 그러면 출근 안 할 거예요. 적당히 컬 넣어주세요. 머리가 잘 풀려야 원장님 보러 한번 더 오죠~”

 행복 미용실도 모처럼 한산한 오전이라 원장님이 태워주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희진 씨, 지금 동네가 엄청 시끄러운 거 알지? 미용실에 있으면 다들 하는 이야기가 같아. 부동산 하니깐 나보다 잘 알 거 아니야? 근데 나는 재개발 안 했으면 좋겠어!”

 “다들 동네분들 재개발돼서 좋아하시던데. 원장님은 여기가 익숙하죠? 또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신 분이니깐 그 이유는 알겠어요.” 

 “그렇지. 여기에서 장사한 지가 10년도 넘었어. 그때는 집 값이 얼마 안 했을 때라서 나 같은 서민도 열심히 살면 상가주택을 살 수가 있었지.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걱정돼서 주변 주택가 동네를 돌아다녀봤는데. 한숨만 나와. 상가주택들이 왜 그렇게 비싸졌는지 엄두가 안나.”

 행복 원장님의 걱정은 부동산을 하는 나 역시도 잘 안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상승되면서 재개발 재건축으로 붐이 불었다. 오히려 주택가들이 눈에 띄게 올랐다. 재개발 주택지에 위치한 상가주택은 아파트 상가와 아파트를 둘 다 받을 수 있는 이점 때문에 금액이 만만치가 않다. 재개발의 투자 기대심리로 주택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희진 씨, 어디 가서 내 얘기하지 말아 줘. 지금 동네 사람들은 재개발로 우린 돈 벌었다고 하는데 사실 난 모르겠어. 나는 재개발 안 했으면 좋겠어.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서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원장님. 미용실 오다가 플랜 현수막을 봤어요. 찬성 동의율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업이 시행돼요. 우리 동네도 재개발이 될 겁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아파트 상가를 받는 방법도 있고, 현금 청산 하는 방법도 있어요. 궁금한 점 있으면 저한테 물으러 오시고요.”

 “진짜 막막해. 벌써 조합사무실 찾아가 봤었어. 상가주택이라서 아파트 하고 상가 주택 신청하면 된다고 하더라고. 근데 조합원이지만 상가 평당 금액이 너무 비싸서 엄두도 안나. 이게 누굴 위한 개발인지 모르겠어. 그냥 나 여기서 미용실 마음 편하게 장사하게 두면 안될까 그런 생각이 들어.”

 “원장님의 고충들 충분히 이해가 가요. 요즘은 외지인들 상담이 제법 많아요. 이게 누굴 위한 개발인지 저도 헷갈리네요.”

“희진 씨, 내가 희진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깐 부탁하나 하자. 영자 할머니라고 미용실에 찾아오는 분이 있거든. 내 미용실 뒤편에 쓰러져가는 파란 대문 주택. 나갈 때 한번 보고 가봐. 참 안쓰러운 분이야. 닥치는 대로 일만 하느라 건강도 많이 쇠약해지고, 근데 어디서 재개발 소리를 들었는지 그동안 찾아오지도 않던 아들놈들이 오기 시작했다는 거야. 물어도 아무 소리 안 하던데 가끔씩 맞기도 하나 봐. 연락처 줄 테니깐 희진 씨가 영자할머니 신경 좀 써줘 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재개발한다 하면 갑자기 안 오던 자식들이 찾아오거든요. 영자 할머니 집도 그런가 보네요.”

  “하루도 맘 편할 일이 없어. 나도 걱정이 많은데 영자 할머니는 오죽하겠어? 자식들이 빨리 집 팔아라고 난리던데. 부동산 업자들도 할머니 찾아오는 거 같고. 그래도 김소장이라면 할머니 편이 되어줄 거 아니야?”



 이영자 010-1**4-5**8. 미용실 원장님이 건네준 전화번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미용실 뒤편으로 파란 대문을 한번 확인한 후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가까운 거리라 걸어서 출퇴근한다는 건 큰 이점이다. 희진 역시도 무거운 발걸음을 걷고 있다.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은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나? 서소장님과 무지개 부동산을 정하면서 집도 가깝고 아이들 학교도 거리가 적당해서 좋아했었는데. 행복 원장님은 원장님대로 나는 나대로 걱정이 된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걱정보다는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는가일 것이다. 

 오늘따라 주택 골목 어귀에 걸린 화려한 경축 현수막이 유난히 더 눈에 들어온다. 소란스러운 동네 정들었던 주택가 골목들이 하루가 다르게 낯설다.      




 따르릉.. 따르릉...

 “안녕하세요. 무지개부동산 이죠? 재개발 상담하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김소장님, 재개발 지금 어느 단계까지 왔나요?”

 “거기 부동산 맞죠? 지금 프리미엄 얼마 정도에 시세가 형성되었나요?”

 “소장님, 지금 전화상담 가능하신가요?”     


  요즘 사무실에는 외지인 전화 상담이 늘었다. 전화량이 늘어나다 보니 최근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샀다. 가족들과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였다. 유선 이어폰을 쓰는 장면이 있는데 한 팀의 동료가 “무선 이어폰 없어?”라는 질문에 그 연예인은 “이어폰은 줄이 있어야지.”라고 한다.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했다. 그 분과 나는 같이 늙고 있는 것이다. 이어폰은 당연히 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무선이어폰을 쓰고 보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상담 전화가 전국구라 그 지역의 말투도 다양하다. 부동산 불패라는 말도 생겨났다. 평일에는 전화로 상담하고 그중에 적극적인 분은 주말을 이용해 임장을 온다. 주말에는 남편이 투자자와 임장 하러 다니고 있다. 

 희진은 사실 전화로 하는 상담이 부담스럽다. 재개발 상담을 하다 보면 앞으로의 진행 과정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항을 알려준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들을 상담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앞으로의 일정대로 될 수 없음을 일일이 설명을 한다. 장밋빛 투자라는 건 없다. 투자도 인생처럼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부동산 경기가 좋지만 항상 봄날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일반적인 투자자들은 지금 상황만을 보고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다. 향후 돈이 얼마나 더 오를지 부동산 전문가인 소장님이 확신을 달라는 거다. 희진은 차마 말을 내뱉지 못하고 말을 삼킨다. ‘그것까지 내가 어찌 아냐고요!’.

  부동산 불패로 재개발에 대한 묻지 마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희진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자 노력한다. 주변에서 ‘재개발로 돈 벌었다’라는 말만 듣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환상에 사로잡혀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다. 부동산 일을 할수록 이런 상황은 덜컥 겁부터 난다. 투자는 항상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봐야 한다. 희진은 일을 하면서 배워가는 게 더 늘어난다.      




 책상 위에 둔 이영자 할머니 전화번호 메모를 살펴본다. 미용실 다년 온 후 전화통화도 몇 번 했었다. 불편한 다리로 오는 게 힘드셔서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궁금하신 것도 많고 걱정거리도 많으셨다. 미용실 뒤 편에 파란 대문을 찾아가기도 쉽다. 

 내가 사는 익숙한 동네라서 집을 찾는 건 쉬운 일이다. 골목집들을 돌고 돌아 할머니 문패를 확인했다. 안쪽은 제법 빈 집들이 눈에 보인다. 빈 집들이나 쓰레기를 쌓아둔 빈 공터를 보면 재개발이 필요하긴 하다. 밤이 되면 경찰차들이 수시로 골목들을 다닌다. 밤이 되면 동네가 제법 을씨년스럽다. 


 “이영자 할머니, 집에 계시죠? 저 무지개 부동산 김소장입니다.”

 “김소장님,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찾아오느라 힘들었죠?”

 영자 할머니의 굽은 허리만큼이나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몸도 불편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마저도 시선이 불편해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맘에 걸린다. 일부러 희진은 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장님, 제가 사무실 가야 하는데 이래 오게 해서 죄송해서 어쩝니까. 누추하긴 해도 편히 앉으세요.”

 “어르신, 말 편하게 하세요. 그리고 제가 젊어서 여기 찾아오기 더 쉬워서 온 거라 생각해 주세요.”

 이영자 할머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굴곡이 진 주름사이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눈에 보이는 휴지를 건넸다. 

 “소장님, 한번 보세요. 집도 누추하지만 제 마음이 더 찢어지네요. 미용실 원장님한테서 이야기는 대충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집을 얼른 팔아야 해요. 그래야 아들놈들이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못한 부모노릇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집안이 엉망이다. 여기저기 망가진 곳이 눈에 들어온다. 아들이 술 먹고 행패를 부린다더니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상황만 봐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김소장님. 저는 이렇게도 복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   루를 술로 버티며 살았어요. 음주하는 날에는 폭언이 일쑤였고, 어린아이들에게 손찌검도 했어요. 그러다가 병을 얻어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제가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잘 커간다는 건 제 욕심이었겠죠? 아이들이 용기를 잃고 방황할 때 안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다 제 책임입니다.”

 “아니에요. 모든 게 저는 할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단지 상황이 안 좋았을 뿐입니다.  사실 제가 지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김소장님, 저는 제가 위로받으려고 이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아들 한 명은 가출해서 안 본 지 오래됐고요, 둘째는 이혼한 후에 집에 가끔 와서 자고 가곤 합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어떻게 여기가 재개발된다는 소문을 알게 되었는지 돈 달라고 이렇게 행패를 부리고 갑니다.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나 내 아들을 보니 반갑더라고요. 이게 부모인가 봅니다. 돈 달라고 찾아온 첫째 형이 오자 둘째 녀석도 돈 달라고 그러네요. 한 편으로는 부모 역할도 제대로 못했는데 돈으로라도 보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희진은 이영자 할머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파란 대문을 나섰다. 어머니란 존재가 자신을 희생하는 역할이긴 한데 어디까지 그래야 할까? 행패 부리는 아들에게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는 그 말로 인해 더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위로의 말도 공감도 할 수 없었다. 오늘 밤은 감정이 뒤죽박죽이라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현실을 마주해야 할 상황이다. 하늘의 시커먼 먹구름이 혼란스러운 내 상황을 아는 듯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번 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내가 이영자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지? 할머니가 59㎡를 신청하더라도 감정평가 금액이 낮기 때문에 추가분담금을 마련할 수가 없다. 소득과 재산이 없기 때문에 대출은 불가피하고 이자 낼 여력도 없다. 방법은 하나다. 결국엔 외지인에게 집을 팔아야 한다. 평형 신청을 앞두고 있다. 차라리 인기 평형대를 신청해서 매매를 도와드려야겠다. 이게 이영자 할머니에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이영자 할머니께서 연락도 없이 사무실에 찾아오셨다. 눈가 주변에 보라색 멍자국이 얼핏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이영자 할머니, 혹시 얼굴 맞으신 거 아니에요? 이거 누가 그랬어요?”

 “김소장님, 그냥 집에서 넘어져서 그랬어요. 신경 쓰지 마요.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아니요, 할머니 이거 넘어진 거 아니에요. 돈 달라고 아들이 때린 거 맞죠? 그래서 지금 빨리 매매해 달라고 물어보시러 온 거 아닌가요?”

 침묵은 또 다른 긍정이다.

 “하.. 할머니. 제가 그동안 아무런 말도 못 했어요. 간혹 제가 하는 말로 인해서 할머니의 아픈 상처를 들추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할머니 못 박힌 채로 살고 계시는데 제가 가슴에 또 망치질하고 싶지 않아서요. 근데 폭력은 아니에요. 돈 달라고 행패 부리는데 그 돈을 또 마련하시려고 애쓰는 모습 보니깐. 경찰서에 전화해 봐요. 도움을 요청해 보자고요!”

  “김소장, 그러지 마세요 제발. 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날 명백히 실수였어요.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아 줘요. 아들 두 놈이 재개발 이야기로 싸우다가 말리다가 이렇게 된 겁니다. 손님이 있다면서요, 적당한 선에서 매매하고 조용히 살 집 하나 알아봐 주세요.”


  이영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일단 심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모르는 척 넘어가주길 바라는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죽지 못해 산다고 버티는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야겠다고 희진은 다짐한다.      

 주말에 남편 동우와 이영자 할머니 모시고 새로운 집을 보기로 했다. 5층 정도의 연식은 된 아파트지만 할머니에게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동안 여기서 맘 아프셨던 일들 잊으시고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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