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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3. 무지개 공인중개사 사무소

 서소장과 남편 동우와 벌써 2시간째 걷고 있는 것 같다. 두리번 두리번거리면서. 

가게 앞을 지나치나 싶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한 모퉁이에 멈춰 서서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다니는지 지켜보신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이다. 서소장 그 옆으로 나도 조용히 따라 섰다. 

 “희진 씨, 잘 봐봐. 가게 앞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연령대와 그 주변을 봐.”

 “소장님, 더운데 우리 근처에 시원한 아이스커피라도 마시고 좀만 쉬어요.”

 “부동산 오픈하기 전에 희진 씨 한약 한 첩 지어줘야겠어. 덕분에 여행도 잘 다녀왔는데 말이야.”

 “소장님, 여행 다녀오시고 나서 충분히 선물 보따리 답례받았거든요!”

 희진은 서소장이 가게 매물 보러 가자고 이야기 꺼냈을 때 신발장에서 운동화부터 찾았다. 집에서 나설 때 운동화를 선택한 나의 재치가 탁월했음을 동우를 보며 깨달았다. 구두를 신은 남편 동우의 표정을 보니 꽤나 발이 불편한 거 같다. 벌써 며칠 째 이러고 다니고 있다. 서소장의 기세를 보아하니 다른 지역까지 임장 가는 게 아닐까 불안이 밀려온다. 

 서소장은 분명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희진 씨, 나는 다른 사람 챙기는 성격도 안돼. 어느 누군가를 알뜰살뜰하게 못 대해. 조금은 이기적이야 나.” 그렇게 말했던 그분은 어디 계신가요?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는 말 공감한다. 말만 그렇게 하시지 속은 어느 누구보다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서소장은 본격적으로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셨다. 손님에게 집을 안내할 때도 나를 데리고 다녔고 계약과 잔금이 있는 날은 꼭 동참시켜 주셨다. 서소장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도 그분의 진심이 느껴졌다. 

 “희진 씨 이제 우리 사무실 한 번 보러 다녀보자!”

 “...... 잠시만요. 제가 잘 못 들은 거 같아요. 누구 사무실요?”

 “누구 사무실이라니? 희진 씨도 자격증 있어서 알잖아. 개업공인중개사는 이중으로 중개사   무소 개설등록 할 수 없는 거. 그럼 나겠어? 희진씨겠어? ”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너무 당황스러워서요. 저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희진 씨,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드는데? 언제까지 나만 따라다닐래?”

 “소장님, 혹시 제가 알게 모르게 실수한 거 아니죠? 아니면 저한테 섭섭한 일 있었다든지.”

 “하하하. 희진 씨 쓸데없는 오해 하지 마! 솔직하게 나 희진 씨 같이 있어서 지금까지 이 시간들이 너무 좋았어. 혼자가 편하다 생각했는데 둘이라서 더 좋은 거 있지. 같이 더 있다가는 내가 희진 씨 안 놔줄 거 같아서 그래. 내가 아끼니깐 그래서 보내줘야겠다 싶은 거야. 내   가 이제껏 희진 씨 지켜보고 있었어. 홀로서기 충분해! 오히려 날 걱정해 줘. 혼자 있는 게  적응이 잘 될까 몰라.”

 서소장의 진심이 담긴 격려에 시름이 깊어졌다. 과연 내가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괜찮을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괜스레 겁부터 먹고 난다.      

 서소장은 ‘희진 부동산 사무실 구하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될까? 하시며 여행도 다녀오셨던 분이 열의로 불태우고 계신다. 물론 그게 나를 위해 그런다는 것쯤은 잘 안다. 그래서 한 편으로 고맙고 가슴 한편이 찡하고 그렇다. 

 오늘따라 더 비장한 각오로 남편 동우에게도 미리 연락을 했다. 서소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손님들이 사무실 왔다가 그냥 돌아갈까 봐서, 이제껏 가게 문 한번 맘 편하게 못 닫았어.”라고 하셨는데 오늘도 가게 문을 일찍 닫으셨다. 

 “신경 쓰지 마. 내가 부동산 오픈할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때야.  휴일 날 정도는 부동산 가게 문 닫고 아이들과 하루 놀아준다고 해서 지금과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 시간 지나고 나니 아이들은 컸고 후회만 남게 되더라고. 그리고 지금은 희진 씨  부동산 자리 찾는 게 더 우선순위야. 또 시간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고 싶지 않아. 그때 내가 발 벗고 나서서 가게 자리 좀 같이 봐줄걸 그렇게 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아.”

 “소장님. 한두 번도 아니고 부동산 문을 쉽게 닫으시니깐 제가 부담스러워서요.”

 “희진 씨. 나는 빚지고는 못살아. 그때 나 여행 간다고 내 사무실 봐줬잖아. 그거 보답하는 거야. 그래야 내 맘이 편해. 동우 씨도 얼른 나서요. 저는 어제 로드뷰 보다가 딱이다 싶은 장소를 찾았거든요. 얼른 가봅시다!”


   현장에서 두 발로 걸으며 걷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다. 이번 물건지는 희진이 집 근처다. 서소장이 주변 소장님들에게도 SOS를 요청했던 것이다. 좋은 물건 있음 얘기해 달라고 여기저기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익숙한 곳이라 그런지 희진에게는 제법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다. 

 “서소장님, 저는 이 매물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아늑한 느낌이 들어요.”

 “희진 씨, 내 생각도 그래. 항상 아이들 곁에 있고 싶어 했잖아.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딱이다! 란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동우 씨는 어때요?”

 “저는 소장님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언제 빚을 다 갚을 수 있지 모르겠어요. 이제껏 알아봐 주신 매물 하나하나 다 좋았지만, 이 매물은 집도 가깝고 아이들 학교 근처라서 희진이한테 장소가 주는 부담은 없을 거 같아요.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거 같아 주책없이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요.”

 “아휴, 동우 씨 부끄럽게 왜 이래요? 내가 희진 씨 좋아서 그러는 거야. 여행 간다고 일주일 내 가게 봐준 거에 대한 빚이야. 나는 이제 빚 없어. 알죠? 젊을 때 열심히 살아요. 나도 젊을 때 힘들어 본 사람이라서 알아요. 다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힘들 때 서로 부족한 부분 채워가면서 이끌어주면서 우리 그렇게 인생 살아봐요.” 

 우린 만장일치로 집도 가깝고,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언제든 올 수 있는 위치로 선정했다. 천여세대의 아파트 상가 코너에 위치해 있고, 가게 앞으로 8차선 도로를 건너면 주택가가 마주 보고 있다. 그 주택가 안에 희진이 가족이 살고 있다. 아이들이 신호등만 건너면 쉽게 올 수가 있다.       

  희진과 동우는 하루 일과 중에 평일 아침이 제일 바쁘다.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밥을 먹고 난 뒤 함께 집을 나선다. 희진은 두 아이들이 교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후에 손을 흔든다. 그러고 난 뒤 발걸음을 돌려 무지개 부동산으로 출근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부동산 사무실과의 거리는 약 10분 정도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데 고민도 없이 선택했다. 희진은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어서 아이들에게만큼은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진 않았다.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 갑갑했던 공기를 환기시킨다. 간단하게 청소를 마친 뒤 전기 티포트에 둥굴레를 티망 넣어 버튼을 누른다. 차를 우리기에는 전기 티포트만 한 것이 없다. 서소장님께 선물로 사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다. 사무실이 순식간에 구수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좀 식히고 나면 절반은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두고, 나머지는 보온으로 따뜻하게 손님에게 내어주면 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10평 남짓 되는 사무실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차를 끓여 놓고 간단한 정리 후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다. 서소장님은 먼지도 없는 사무실에 매일 빗질 후 바닥을 닦아야 잡념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서소장님의 바라기인 나도 한번 따라 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서소장님은 “삶은 수행이야!”라고 외치시는데 “저는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라고 항변하고 싶다. 무지개 부동산을 열고 들어설 때면 문득 서소장님이 생각난다. 어딘가에서 날 보고 있을 것만 같다. 

 부동산 일을 시작하면서 느낀 점은 오늘이 매번 다르게 펼쳐진다는 거다. 뭔가 정해진 틀이 없다.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항상 같은 루틴의 반복이라 일상이 조금은 지루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부동산 정책도 시시때때로 변화되기 때문에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오늘 하루는 어떤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까? 조금은 기대가 되는 날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하며 여유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 말이 떠올라서 피식 혼자 웃어버린다. ‘소장님은 얼죽아 몰라요?’라고 말하던 청년. 얼어 죽어도 아이스!라고. 따뜻한 커피만 고집하는 희진은 점점 ‘~라떼’ 세대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똑똑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명쾌한 종소리가 났다. 희진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오신 태형씨네 맞죠?”

 “안녕하세요. KTX 가 연착이 되는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기차 타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태형 씨 부모님도 편하게 김소장이라 불러    주세요.”

 시원하게 냉장고에 둔 둥굴레 차를 내어드렸다. 차 한잔에 서울 아버지는 낯선 곳에서 대접받는 기분이라며 감사 인사를 하셨다. 희진은 미소로 화답했다. 

 “김소장님. 태형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갈증이 났는데  이렇게 시원한 차를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일단 다들 땀도 식히시고요, 차 한잔도 드시고 매물 보러 가도록 해요.”

 며칠 전에 무지개 부동산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지역이 서울이다 보니 되도록 한번 방문 왔을 때 여러 매물을 보여야 한다. 아들이 지방으로 발령을 났다고 급하게 집을 구한다는 것이다. 태형 씨 발령에 맞추어 이사날짜가 가능한 매물 3개를 미리 약속을 정해두었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바쁜 일정을 두고 매물을 보러 오는 게 쉬운 건 아니었을 거다. 희진은 내심 걱정과 불안으로 더 신경이 쓰였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섰다. 사무실을 나서기 전 희진은 태형씨네 가족에게 각각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일단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제가 매물 3개를 간략하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기억하고 계시죠?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부터 매물 1, 매물 2, 매물 3이라 명명한 뒤 그 매물의 특징과 본인들의 생각들을 간략하게 적어두세요. 그래야 나중에 집을 다 보고 나서 기억하기 좋습니다.”

 “네! 김소장님 이제 출발해 보시죠. ”

 희진은 서울 손님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도 구석구석 둘러보고 커뮤니티도 함께 둘러보았다. 오늘 보기로 한 매물들도 꼼꼼하게 살펴 드렸다. 서울 아버지와 어머니도 아들의 첫 집을 구한다는 생각에 어느 누구보다 진심이셨다.

 “김소장님, 제 와이프와 제 집 구할 때도 이렇게 꼼꼼하게 본 적이 없습니다. 김소장님이 옆에 계셔서 매의 눈으로 봐주시니 제 아들 집인데 저도 뒤처지면 안 되죠. 하하. 그리고 아들의 살 집이라고 생각하니 허투루 볼 수 없겠더라고요.”

 “김소장님, 엄마가 되어가지고 전 오늘 도움이 안 된 거 같아요. 따라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죽겠어요. 아직도 숨이 찹니다.”

 “하하하. 어머니 많이 힘드셨죠? 여기가 서울과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보니 시간 내서 오셨을 때 다 둘러봐야 된단 생각이 들어서 제가 무리하게 일정을 짠 거 같아요. 이제 사무실 가서 좀 앉아서 쉬면서 각자 수첩에 적은 것들 공유해 보도록 해요.”

 “김소장님, 저는 태형이 소장님께 맡기고 집에 가도 걱정이 없겠어요. 타지에서 김소장님을 만나게 돼서 다행입니다. 소장님도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하셨으니 제 기분 알 거예요. 성인이 되어도 제 눈에는 철부지 애로 보이거든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태형 씨와 부모님과 함께 사무실로 다시 복귀했다. 제법 각자 꼼꼼하게 매물들의 특징들과 생각들이 적혀있었다. 이 정도면 다들 모범생이다. 넷 이서 열띤 토론이 열렸다. 어느 정도 이야기 끝에 점점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김소장님 저는 저의 첫 집을 정했습니다!”

 태형 씨가 매물을 볼 때 눈빛이 예리하다고 느꼈다. 본인이 엔지니어 연구원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역시나 시설물 쪽을 볼 때는 눈이 반짝이는 거 같았다. 재미있는 부분은 집을 손님들과 같이 보다 보면 직업적인 특성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부동산 통해서 집 볼 때면 이것저것 살피게 되겠지? 내심 조용히 티 안 나게 웃었다. 


 매매 계약서 쓰는 날을 정했다. 서울 부모님은 기차를 타고 나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시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셨다. 태형 씨는 혹시나 해서 선배에게 연락을 해두었다고 한다. 

 “태형 씨,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요. 물론 앞으로 계약하는 날부터 다시 시작이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보자고요. 옆에서 많이 도와줄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네요.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은 설레기도 하고요. 소장님께서 도와준다고 하시니 적장에서 지원군을 만난 거 같아요. 

 사실은 제가 지방으로 발령서를 냈어요.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거는 쉽거든요.”

 “태형 씨가 자진해서 발령서를 썼다고요?”

 “처음에는 부모님도 말렸었죠. 저희 부모님 보셨잖아요. 제가 아들이라서 이런 말 한다기보다 참 좋으신 분들이에요. 마음도 여리셔서 제가 방황할 때 말 한마디 못 건네더라고요. 

 저를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어요. “

 “혹시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요?”

 그 질문으로 하여금 나는 선을 넘었다. 서소장님이 내게 주의를 줬던 부분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타인과 얽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타인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감정 소모하지 말 것!” 옆에서 내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저는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승진을 위해서 같은 동료들을 배척해야 했어요. 그런  경쟁사회에서 도태되는 것만 같아서 빨리 돈을 모으고 싶었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해 봤죠. 주식과 함께 코인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 누구는 집을 샀다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안타깝게도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은 돈 마저 다 날렸어요. 정말 하루를 빠짐없이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살면 희망이 있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라고요. 눈물을 참아내면서 살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희진은 그냥 말없이 들었다. 저 마음이야 나도 모르는 건 아니니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친구는 코인으로 집을 샀다는 소리 들었을 때 나 역시도 상대적인 박탈감에 허무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깐. 

 “저는 친했다고 생각하는 동료가 있어요.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출근 전에 영어토익반을 다녀오더라고요. 승진을 염려해 둔 건이겠죠. 저도 다른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직장인 토익반을 갔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직장인들이 한 반을 가득 메웠다는 거죠. 그동안 나만 너무 안이했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란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고 버텼습니다. 어느 날 공허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

 “그 생각이 들어서 지방으로 오게 된 건가요?”

 “제가 지방으로 내려오게 된 건 오늘 만날 선배 덕분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술 한잔 사줄 테니깐 나오라더라고요. 사실 그 선배는 승진에서 밀려서 지방으로 가게 된 거였거든요. 선배도 그때는 인생이 끝났다!라고 생각했어요. 반전이라면  반전이죠. 그곳에서 오히려 일이 잘 풀렸더라고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환한 얼굴이었어요. 결혼 생각도 없다고 했었는데 담달 결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동안 선배 걱정해 준 거  괜히 했더라고요. 저도 평범하게 살고 싶더라고요. 동료 이겨보겠다고 몰래 토익반 다니는 것도 그만하고 싶어요. 가장 힘든 일이 평범하고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하죠? 저는 평범해지기 위해 결심을 한 거예요.”

  대답 대신 태형 씨에게 따뜻한 차를 한잔 건넸다. 그동안 마음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따뜻한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태형 씨에게 건네는 나의 조용한 위로다. 이 사람은 상처를 극복하고 살고자 또는 살아내고자 온 것이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다시 출발하면 된다. 다시 넘어지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걸 감내하면서 견뎌낼 필요는 없다. 

 “태형 씨, 이제 앞으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

 그동안 잘 견뎌냈다고 기특하다고 안아주고 싶다. 태형의 뒷모습을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부동산 문을 나서면서 뻘쭘하게 웃는 뒷모습을 보며 한번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어느 누구나 살면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온다.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태형 씨는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심한 나 역시도 무지개 부동산을 한다는 건 큰 용기였다. 지금 이대로가 가장 예쁘다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나에게 토닥여본다. 살면서 때론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다는 것,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아직까지 세상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태형 씨, 우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소소하게 인생 살아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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