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는 기원전 404년 아테네 전쟁 이후 역사적으로 뛰어나고 강인한 군인들(스파르티아테스)를 기반으로 에게해의 패권을 가져가는 듯 했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승리가 무색하게 수십년만에 패망에 이르게 된다.
왜 강인한 군사력을 가진 그리스의 패권국이 수 십년만에 멸망하게 되었을까?
스파르타의 시민권(호모이오이)은 모두가 시민권이 있는 부부에서 태어난 아이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다.더 나아가 7세부터 아고게(agoge)라는 혹독한 군사훈련을 통과 해야지만 비로소 진정한 시민권을 획득 할 수 있다.
이러한 외부 집단에 대한 높은 배타성을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인은 호모이오이의 뜻인 동등한자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전체 인구의 5%만이 그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몇몇 사람들은 스파르타의 패망 원인이 강인한 군인인 절대 수 부족이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허나 실제 전투에서 1계급인 호모이오이인 이외에도 스스로 항복한 포로들인 2계급 페리오이코이, 포로에서 노예로 만든 3계급 헤일로타이도 전투에 참여하곤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이나 전략들이 '호모이오이인' 특정계층에게서만 나오게 되었고 이들이 대부분의 토지와 권력을 소유하였기에 외부 뛰어난 인재 유입이 아닌 그들 소수만의 경쟁속에서 점차 패망에 접어들게 된다.
반대로 몽골제국의 군대는 어떻게 가장 큰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칭기스칸의 법률체계인 '야사'는 개방적 형태의 법률 체계로 능력주의 중심으로 혈통이나 귀족적 배경보다 전투 능력과 충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제도이다. 이를 통해 침략 당한 국가일지라도 우수한 인력이라면 인종, 국가, 출신을 따지지 않고 군인으로 활용 해 외국인 출신들도 고위직으로 승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실제 전쟁에서도 몽골 군인의 30%는 비몽골인 출신이었고, 사례로 헝가리를 침략할 시 헝가리에서 잡은 인력중에 일부는 몽골인이 아닌 아프리카인 이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한 성 요새가 많지 않은 평야 지역에서 싸우던 몽골군대가 험준한 유럽의 성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건, 포로로 잡은 중국 기술자들을 적극 채용하여 공성전 무기를 만들어 활용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몽골은 종교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 이슬람,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과 하였으며 실제 100여개가 넘는 종교기관이 몽골 내에서 설립 될 수 있었다.
이런 적극적인 개방형 전략으로 외부의 혁신 유입을 가속화 시켜 장기적인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배타성이 아닌 개방성 전략이 몽골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리 조직은 현재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스파르탄인가? 몽골리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