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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상실의 시대>

by Seon


우리는 연예인들 혹은 유명인들에게서 늘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이야기 한다. 때로는 예술작품, 고가의 제품들에서 아우라가 나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아우라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종교에서 출발한 아우라의 어원"



아우라는 본래 ‘숨결’, ‘신비로운 분위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αύρα)에서 유래했으며, 중세 성화에서 성인들의 머리 주위를 감싸는 후광을 의미하는 라틴어 님부스(Nimbus)와 그 의미가 유사하다. 즉 아우라는 초기에는 종교적, 신적 존재로부터 느낄수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 등을 지칭했다.



아우라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건 1935년에 쓰인 '발터 벤야민'의 논문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부터이다. 벤야민은 아우라에 대한 개념을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게 느껴지는 어떤 것의 일회적 나타남'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원본을 마주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림은 물리적으로 관람객의 눈앞 몇 미터 거리에 ‘가까이’ 있지만, 그것이 겪어온 수백 년의 시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세계적인 유명세가 만들어낸 위업들은 관람객과 작품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리적 ‘먼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작품에게 아우라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벤야민의 개념으로 돌아와서 이야기 한다면,



1)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지만)


2)멀게 느껴지는 (심리적으로는 위압감/경외감을 느끼는)


3)일회적 나타남(순간의 느낌)


을 우리는 아우라를 느낀다고 이야기 한다.







"아우라 상실의 시대"



이런 아우라를 느끼는 상황에 우리는 대부분 핸드폰이나 사진기를 꺼내든다. 그리고 급하게 아우라를 사진에 담고자 하여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그 사진을 보게 되면, 우리는 늘 무언가 빠져있는 듯 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리곤 다시는 한참 뒤에 보더라도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예술품, 유명인의 사진들을 핸드폰 배경화면이나 티셔츠에도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아우라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아우라를 느끼는 대상을 더욱 정확히 찍는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 할 수 록 아우라가 사라지는 것이다.



"왜 아우라는 사라지게 되는것인가?"



벤야민의 개념으로 다시 돌아오면 '아우라'는 1)가까이 있는 대상에서 2)심리적 경외심을 느끼는 3)그 순간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가까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기존의 기억으로 경외심을 느끼기에 1,2)는 충족할 수 있지만 '3)그 순간'은 충족 시킬 수 없다.



그 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내가 그 장면을 바라본 순간의 공기의 흐름, 내 마음가짐 상태, 호흡의 규칙, 그 상황의 분위기 등은 그때와 100% 동일 하게 만들기 어렵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상황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감정, 개인의 심리상태, 개인이 느끼는 주변의 분위기 등은 그 순간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느끼는 아우라는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물/장면/경관을 보고 누군가는 엄청난 아우라를 느끼지만, 누군가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



기술의 발달로 접근성은 높아지지만 그 경외감은 접촉 빈도로 인해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고, 결국 우리가 최초로 경험하고자 하는 아우라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한강 뷰 아파트를 살더라도 계속해서 바라보면 처음 느낀 감동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의 경관이라도 매일 본다면 그 대상과의 거리감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에 초기에 아우라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순간을 잃어버린 시대"



결국 우리는 순간을 기록하고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순간 그 자체'를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로 붙잡은 이미지는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지만, 그 장소의 공기, 나의 미세한 떨림, 그리고 벅차오르던 경외감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진정한 아우라는 카메라 렌즈가 아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현재를 마주하는 우리의 마음에만 새겨지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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