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는 유리, 그리고 참수당한 발명가: 우리는 어떤 혁신을 죽이고 있나?>
고대 로마 시절, 플리니우스의 기록에는 흥미로우면서도 섬득한 이야기가 하나 전해진다. 한 발명가가 당시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에게 '깨지지 않는 유리'라는 놀라운 발명품을 바쳤다는 이야기다.
황제 앞에 선 발명가는 자신의 발명품을 증명하려는 듯 일부러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지만 유리잔은 산산조각 나지 않고, 금속처럼 찌그러진 채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그러자 발명가는 주머니에서 작은 망치를 꺼내 찌그러진 부분을 툭툭 두드려 원래의 모양으로 완벽하게 복원했다.
놀라운 광경에 황제가 물었다.
"이 유리잔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자가 또 있는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저 혼자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발명가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티베리우스는 근위병에게 그를 끌고 가 참수하라고 명령했다.
이 새로운 물질 때문에 자신이 쌓아둔 금과 은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국 이 혁신적인 기술은 2000년이 지난 1965년에 이르러서야 독일에서 폴리카보네이트(PC)라는 형태로 세상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물론 로마시대에 발견한 이 발명품이 무엇인지는 다들 논쟁의 대상이다) 누군가의 욕심, 정확히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눈앞의 혁신을 어떻게 제거하고,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었던 이익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연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오늘날, 우리의 '깨지지 않는 유리'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깨지지 않는 유리'를 마주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떤 발명가를 사형에 처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이들이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 우려하고, 기존 창작자들은 AI의 저작권 문제에 날을 세운다. 금융권은 스테이블 코인, 탈중앙화 금융(DeFi)이 기존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모든 반응은 어쩌면 티베리우스 황제가 느꼈던 두려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내가 쌓아온 기술의 가치, 내가 속한 산업의 안정성, 내가 누리는 부와 명예가 새로운 혁신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다.
물론 혁신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 자체를 거부하고 혁신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더 큰 기회를 놓치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결국 혁신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내가 무엇을 잃을 것인가'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로 관점을 전환하는 데서 시작된다. 2000년 전 한 발명가의 죽음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눈앞의 금과 은을 지키기 위해 미래의 '깨지지 않는 유리'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기꺼이 그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