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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다듬을 것 1

by 설아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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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자네 왔는가?
코가 떨어져 나가게 추운 날이로구만. 어서 앉아. 괜찮아, 불 옆에 앉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손 모아 그렇게 서 있나. 옳지. 여기 방석 위가 따끈하니 좋아. 오래전엔 손을 호호 불어가며 폭닥 붙어 앉아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네. 내 입에서 나온 여러 갈래 하얀 숨이 하늘 위로 올라갈 때 사람들이 웃으면서 가더랬지. 그럼 그 모습에 마음이 부푼 풍선처럼 둥글게 떠오를 것만 같더란 말이야, 내가 그래도 오늘 내 할 일 잘했구나 하고. 그게 낙이 아니겠나? 사람이 제 밥값 술값한다는, 제 구실 했다는 그 마음이 즐겁더라 이 말이지.

사람들이 말이야, 고민도 많고 탈도 많아. 고민도 천차만별이야. 저 놈이 들으면 픽 하고 웃을 사소한 고민이 다른 놈한텐 어깨에 달을 짊어진 만큼 무거운 고민이더라 하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눈을 껌뻑껌뻑하고 있어야 할 때가 있고, 또 다른 걸 들으면 너무 써 반추하듯 그 고민을 몇 번이고 씹어 생각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네. 이걸 다 어째야 하나 생각하니 불현듯 답이 떠오를 때 말을 해 주면 그네들은 또 달라지지. 답을 얻고 가는 놈들은 씩 웃으며 가고 아닌 양반들은 입꼬리에 추라도 단 듯 쓰윽 내리고 다시 가지고 온 달을 짊어지고 가. 사실 그들도 알아. 답은 이미 명확하다는 걸. 하지만 어쩌겠나? 답을 알아도 깨닫지 못하면 답이 아닌 것을.

명심해. 무엇이 답인가를 생각했을 땐 이미 시야가 좁혀져 있다는 걸 말이야.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밥상 위 내 숟가락 끝만 바라보는 게 아닐세. 시쳇말로 뭣이 중헌디, 허는 말이 바로 정수 아니겠나? 인생사 새옹지마. 사람이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법이고 그렇다고 나쁜 일만 줄창 생길 수도 없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네. 그래도 사람이란 게 또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 온 동네방네 산을 올라가도 빌고 하늘에 별이 뜨면 빌고 그네들이 보기에 믿음직한 모든 것에 손을 모아들지. 그래,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넓게 봐야 해. 숟가락 끝이 아니라 내 집 앞 밭뙈기를 보고, 저 멀리 산 중턱에 걸린 해를 보고 바다 끝을 봐야지. 모든 일에 내 앞에 깔린 얇은 길 하나만 볼 수는 없는 법이야. 앞은 중요하지 않아. 내 옆의 모든 것이 그 앞을 만드는 초석인 게지. 옆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한 발자국 내디디면 그게 앞인 것을.

어렵다고? 어렵지 그럼, 지금 같은 요지경에 에둘러 갈 정신이 있나. 일단 따끈한 보리차 한 잔 들어. 그럼 내가 더 얘기해 주지, 이쁘니까. 왜 이쁘냐구? 이 사람아, 내 얘기 귀 기울이는 사람 어디 여럿 있나? 다들 허튼소리 듣는다느니, 덕담이니 하고서는 듣고 뒤돌아 서서 귀 밖으로 흘리는 소리일 얘기에 눈 두고 귀 두는 사람이니 예쁜 게지. 그래, 천천히 들어. 손이 따뜻해질 쯤에 우리 다시 얘기하세.

그래, 어디까지 했더라. 말이 많아지니 도통 어렵구먼. 맞아, 시야를 넓히면 답이 얻냐고 물었지. 아쉽지만 아닐세. 우리가 사는 게 이렇듯 쉬우면 나한테 올 일도 없지 않겠어?

답을 코 앞에 들이밀어도 눈 감는 사람들이 있네. 아주 많아. 들에 색색의 꽃들이 향을 풀풀 풍겨도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다는 말이야. 꽃이 뭔지 몰라 지척에 두고도 멀뚱멀뚱하지. 나한테 오는 사람들 태반이 그래. 결국엔 스스로 들 옆에 앉아 눈앞에 나풀나풀 거리는 게 뭔지 한참을 보고 바람에 실려오는 내음을 맡고서야 눈을 번쩍 뜨곤 하지. 꽃이란 게 무어야, 오색의 예쁜 색을 모아다가 자연의 향을 그득하니 담고 있는 것 아니겠나. 그걸 깨닫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너들마다 다르다 이 말일세. 그런데 그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게 커다란 차이를 두는 거야. 살아가는 것도 똑같아. 팔자소관이니 뭐니 해도 눈 깜짝할 순간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지. 여전히 깨닫지 못해 삶이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대로,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대로 가는 거야. 그걸 어떻게 하냐고? 아,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그래? 그럼 말해줘야지. 깨달음은 내 속에서 오는 거야. 누구도 말해줄 수 없어. 지나가던 만취자의 걸음걸이를 봐도 오는 것이 깨달음이고 말간 아이의 눈을 보고서도 오는 게 깨달음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건 개개인의 세상 숙제인 셈이지. 넘어지고 치이고 할 테지만 얻는 값으로 치면 되지 않나.

깨달음을 얻었냐고? 부족한 인생 뭘 이뤘느냐고 묻는 거나 매한가지네. 이거 맹랑한 사람이야 자네.

내가 이 나이 먹고 얻은 것은 아주 작아.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지 않지. 자네가 아는 걸 내가 모르고 내가 아는 걸 자네가 모를 수 있는 법이야. 그래도 묻는다 하면, 이게 뭐냐면 말이지, 흐름과 후회야.

쌀이 없어 쌀통에 코 빠뜨리고 내 밑으로 줄줄이 있는 애들 얼굴 보며 울던 때가 엊그제에, 돈이 없어 골방에서 덜덜 떨고 있을 때가 있었네. 또 어느샌가 일이 많아져 먹고 싶은 걸 다 먹고도 돈이 남아 따뜻한 방에 누워 넘들은 어떻게 사나 구경하는 여유도 생겼어. 근데 이상하지? 이 흐름을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더 반대로 가 버리더라고. 시야가 좁아진 내 입에선 어렵다 소리만 나오고 배우는 것도 없지, 온 세상이 멈춰 서서 나를 지탄하는 것만 같았네. 오히려 그때 이럴걸, 그러지 말 걸 하는 후회만 늘어간 거야.

일을 하면 될 거 아니냐고? 이 사람아, 나는 신을 모시는 양반이야.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게 일이야. 모객 하는 사람이 아니고 신령님 전에서 인연 되는 손님이 오면 최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일세. 자네도 그래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겠나?

이어가자면, 아까도 말했듯 새옹지마. 좋을 때가 있고 안 좋을 때가 있는 데 이 모든 것이 세상의 흐름이고 배우고 깨닫는 시간인 거야. 채우면 비우고, 웃으면 울고, 모르면 깨닫는 거지. 그러면서 삶이 이어지는 거야.

내가 깨달은 후회는 뭐냐고? 우리 같은 무당 당골네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거지. 신에서 주는 벌이 별 게 아니야. 몸이 아프고 돈이 없는 것이 진짜 두려운 게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지. 당골네들만 겪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받는 벌이기도 하네. 그 후회로 나한테 오는 사람도 수두룩해. 부모에게 못 한 후회, 배우자에게 못 한 후회, 행동 잘 못 하고 말 잘 못 한 것에 대한 후회. 굿을 하고 점을 봐도 안 될 건 안 돼. 그토록 신은 공평해. 말을 예쁘게 하고 마음을 예쁘게 먹으면 안 될 일도 빌면 되게 해주는 게 신이야. 후회할 일을 하지 말고 세상을 넓고 바르게 보게. 정직하게 살아. 후회할 일을 하지 말아.

무당네도 춤만 춘다고 신이 오는 게 아니고 노래타령 부른다고 점사 내뱉는 게 아니지. 내가 바르게 깨끗하게 살아야 신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이 기본인데 다들 이걸 몰라도 너무 몰라. 신이 아니더라도 귀신도 사람이었던 이들이야, 살 만큼 산 이들인데 무당인 척하는 한낱 장사치를 몰라보겠어?

말이 길었네. 그래, 오늘 자네 고민이 뭔지 듣고 방울 한 번 흔들어 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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