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마음이 기울다

인정

by 설안


다음 날 점심, 정이가 가게로 찾아왔다. 우리는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더 맛있는 거 먹지.”

정이가 내 등을 밀며 말했다.

“이열치열이야. 국밥만큼 든든한 게 어딨 어.”

어제 꽃까지 들고 와 준 친구에게 비싼 밥을 사주고 싶었지만, 정이는 내 주머니 사정까지 생각한 듯했다.

“수아. 연주자 말고 작가로 서 있는 모습도 잘 어울리던데?”

정이가 시원한 물을 건넸다.

“작가는 아직 아니지. 그냥… 쓰는 사람.”


나는 김이 오르는 국밥을 내려다봤다.

“근데 이상하게 계속 쓰고 싶더라. 요즘은 거의 매일 쓰고 있어.”

“네 글 좋았어. 진정성이 있었어. 친구라서가 아니라, 진짜로.”

“고마워. 힘이 나네.”


숟가락으로 국물을 천천히 저었다.

“가게에 꽃이 있으니까 좀 다르더라. 분위기가.”

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표정도 좀 살아났어.”

나는 웃으며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래서 말인데…”


정이가 잠시 뜸을 들였다.

“나 기획하는 거 좋아하는 거 알잖아. 너랑 연주하고 싶어. 내가 반주해 줄게.”

페이가 없는 무대는 연주하지 않던 나였다. 그런 나를 알면서도 정이는 제안했다.

“일단 악기를 한 번 꺼내볼게. 케이스에 먼지 쌓였겠다.”

정이가 웃었다.

“나 네 팬이란 말이야. 너는 연주할 때 진짜야.

그냥 연주회 말고, 인문학 강의랑 곁들여서. 어때.”


항상 일을 산더미처럼 벌려놓고는 쩔쩔매는 친구였다. 예전 같았으면 고개를 저었을 거다.

“괜찮을 것 같아.”

“근데 그전에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버스킹 해보려고. 그래서 모임 알아보고 있어.”

“와, 근데 진짜 의외다.”

정이가 웃었다.


“돈하고 상관없는 연주를 한 번 해보고 싶어. 안 하던 것도 좀 해보려고.”

나는 잠시 국밥에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봤다.

“항상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누가 찍는다고 생각하면 더 갑갑했고.”

“나도 그래. 악보 외우는 생각만 하면 미치겠어.

어릴 때부터 그랬어.

가끔은 무대 위에서 멈춰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무서워.”

“너 연주할 때 집중해서 표현하는 모습이 멋있더라.

우린 생각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나는 잠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완벽한 연주가 뭘까.

대가보다 못하면 다 쓸모없는 건가.”

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정이 있잖아. 진심을 싣는 거.

그게 살아있는 연주 아닐까.”


정이가 웃었다.

“나 초대하는 거 잊지 마. 알았지? 근데 무리는 하지 말고.”

국밥집 안에는 잠시 사람들 말소리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흘렀다.


정이가 문득 말했다.

“아 맞다. 네가 말한 사람. 그 사진작가.”

“응?”

“난 알겠던데.”

나는 말없이 정이를 쳐다봤다.

“계속 너 쳐다보더라.”


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순간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앗 뜨거워. 어제 희주도 그러더라…

ㅏ너희가 착각한 거겠지.”

“두 명이나 봤으면 뭔가 있는 거지.”

“에이. 그럴 리가 없어. 밥이나 먹자.”

정이는 한동안 능글맞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여튼. 나 심란하게 하지 마.”

“너 그 사람 좋아하지. 다 보이거든.”

“그냥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 거야. 닮은 점이 보여서…”

“그게 시작인 거지.”

“근데 그 사람이 말을 다 안 하는 여운이 있잖아.

하늘이 걸어온 길이나 느낀 점이…

왠지 깊이 공감이 돼.

같은 예술가라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 걸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도 티가 나면 어떡하지.’

아니라고 하기엔 조금씩 커져가는 마음을 인정해야 하나.


늦은 밤이 되자 친구들이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어플을 켜고 대화창을 열었다.

“있잖아. 발표회는 무사히 마쳤어.

근데… 친구들이 한 말이 자꾸 맴돌아.”

[수아야, 정말 수고 많았어. 어떤 말이야?]

“하늘이 계속 나를 쳐다봤대. 두 명이나 그렇게 말했어…

근데 착각일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누군가가 신경 쓰이면 시선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신경이 쓰인다는 게 꼭 그런 의미는 아니잖아.”

[그렇지. 꼭 그런 건 아니야.]

괜한 기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악기 하는 사람이 멋있다니.’

그냥 한 말이었을 거다.


그때 갑자기 발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안 자고 뭐 해. 일찍 자야 건강하지.”

엄마는 문을 열고 한 번 바라보더니 불을 끄고 나갔다.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엄마는 항상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노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어릴 때도 그랬다.


깜깜한 방,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 모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미안해. 놀랬지.”

모카가 옆으로 다가와 엎드렸다. 나는 말랑한 배를 만지다 모카에게 기댔다.

“네가 보는 엄마는 어떤 사람이니.”


내가 울 때마다 불안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네 세상이잖아.

내가 슬프면 너도 슬프잖아.

그래서 이제 덜 슬퍼하려고.

엄마가 부족한 사람이라 미안해.”


모카의 그르렁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래, 나에겐 모카도, 친구들도 있으니까.’


며칠 뒤, 후속 모임 날이 되었다. 카페 문 앞에 서자 괜히 마음이 심란했다. 의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문을 열기 전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셨다. 들어가자 커피 향이 먼저 스쳤다.


안쪽 테이블에는 이미 몇몇이 앉아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고개를 들었다.

“수아님 오셨어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누군가는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각자 가져온 책과 수첩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런 장면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았다.

잠시 후 모임장인 다영이 손뼉을 가볍게 쳤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첫 시간은 각자가 적어낸 주제 중 하나를 뽑아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다리 타기를 시작했다. 당첨자는 다영이었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제가 쓰고 싶은 주제예요.”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다들 펜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수첩을 펼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그를 바라봤다. 하늘은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손에 펜을 쥔 채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는 놀라 시선을 떨궜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첩을 바라봤다.

펜을 잡은 손끝이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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