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삼켜지지 않는 것들

응어리

by 설안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였다. 일곱 시가 되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일어나. 밖에 나가서 좀 걷던가, 밥을 먹던가.”

“아 엄마… 나 어제 늦게 들어왔잖아. 좀 있다가 할 게.”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너. 그거 모임인지 뭔지 하느라 그런 거 아니야? 쓸데없는 거.”

“후… 아침부터 싸우지 말자. 엄마. 내가 가게 보기 전까지는 내 시간이잖아.”

“뭐라도 해서 건강부터 회복해야 할 거 아니야.

너 다시 연주 안 할 거야?”

“아니… 내가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나도 힘들어.”


엄마는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왔다. 둔탁하게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먼지가 쌓였어. 먼지가. 애가 어렸을 때는 속 안 썩이더니 진짜 왜 이러나 몰라.”

목에서부터 울컥하는 무언가가 차올랐다.

“엄마… 나 어렸을 때 기억은 나?

옆에 없었잖아. 지켜주지도 않았잖아.

나 대학도 혼자 나왔어.

다 커서 엄마 옆에 온 거야.”


엄마는 대답 없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었다. 진한 송진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니까. 내가 너 졸업하고 선본 데 일찍 시집가라고 했잖아.

너 지금 몇 살이야. 서른다섯이야. 더 나이 먹기 전에 가라고.

다음 주말에 나가. 그냥 커피 마시고 밥 얻어먹고 오라고.”


얻어먹고 오라는 말이 마음을 긁었다.


“엄마… 그때가 몇 살인데. 스물다섯이었어.”

얼굴에 뜨겁게 열이 올랐다.

“나 거지 아니야. 내가 왜 얻어먹고 와.

제발 나 숨 좀 쉬게 해 줘.

새벽부터 엄마 통화하고 시끄럽게 청소하는 소리에 잠도 제대로 못 자.”

“너는 왜 이렇게 예민하니. 그럼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해야겠어?”


‘예민하다’는 말을 듣자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부러져 힘없이 나풀거리는 바이올린 활로 시선을 옮겼다.


“몸도 아프고 지금 데이트할 돈도 없는데 무슨 연애야…”

“내가 준다잖아. 빚을 내서라도 줄게. 만나 봐. 집에 80억이 있단다.

나이는 좀 있지만 너 악기 한다니까 만나보고 싶데.”


엄마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몸에 제대로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은 40대 중반의 남자가 어색한 표정으로 브이자를 하며 서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나부터 살자. 연애는 내가 알아서 할 게.

엄마 결혼해서 행복하지도 않았잖아. 뭐 좋다고 나한테 그래.”

“그래도 너희 낳았잖아.”

더 이상 얘기하다간 후회할 말을 할 게 뻔했다.

“알았어. 나갔다 올게. 걷고 온다고.”



헝클어진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었다. 급하게 맨발에 운동화를 신자, 발바닥부터 꿉꿉한 느낌이 올라왔다. 손이 허전했다. 핸드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골목을 따라 한참 걷다 보니 정이와 갔던 국밥집 앞에 서 있었다. 가게 안쪽에서 모락모락 하얗고 구수한 김이 올라왔다. 먹지도 않던 아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매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시끄러웠지.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놀이터 한가운데였다. 뜨겁게 달궈진 그네 의자에 몸을 맡기자 허벅지에 열기가 스며들었다. 녹슨 쇠사슬이 삐걱거리며 느리게 흔들렸다.


눈물이 턱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항상 듣던 말이었는데, 왜 오늘은 끝까지 버티지 못했을까.

아니, 버티고 싶지 않았던 걸까.


까르르 소리와 함께 엄마와 함께 나온 아이들이 보였다.

“엄마. 나 이따가 떠뽀끼 해죠.”

“알겠어. 오늘 학교 잘 갔다 오고.”

“엄마 엄마. 나는 계란 많이 먹을래.”

키가 비슷한 자매였다. 작은 손이 서로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우리 사이도 잠깐은 좋았을 때도 있었는데. 나에게도 가족은 있는데.

나는 왜 혼자 같을까.


쨍—하는 매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모카가 보고 싶다.’

그새 모카의 냄새가 그리웠다.

‘하하. 나 분리불안인가 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혀왔다. 깊게 숨을 들여 마시고 문을 열었다. 가게는 조용했다. 방에 들어가자 모카는 베개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도 조심히 그 옆에 누웠다.

“모카야… 엄마가 꼭 지켜줄게.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

모카가 깼는지 골골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좁은 방, 창문도 캣타워도 없는 공간.

나도 숨이 막히는데, 이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엄마가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벌써 네 번째 이사였다. 가만히 모카를 쓰다듬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갔으면 이렇게 살진 않았을 것 같은데. 천천히 손이 멈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없는 것 같아.

모카야. 많이 사랑해.”


반려동물에게 하루에 스무 번 정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면 좋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도 없던 내가 하기 시작한 게.

포근한 모카의 냄새를 맡자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에서 나왔다. 아직도 가게가 조용했다.


‘어디 나갔나.’

사무실로 향하자 거울을 보며 혼자 끙끙대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해.”

“이것 좀 발라봐.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희끗한 엄마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뒷머리는 보이지 않아 군데군데 바르지 못한 모습이었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염색 빗을 손에 쥐었다. 언제 이렇게 작아졌을까. 해진 등산복 위로 내려앉은 어깨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기다렸다 하지.”

뒷머리에 염색약을 찍어 바를 때마다 아까 엄마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던 엄마는 경제 채널을 틀었다.

“너 고생하지 말라고.”

끝내 미안하다는 하지 않을 셈이었다.

“가난한 데 시집가면 평생 고생하니까.

대충 바르고 부엌 가서 아침 먹어.”

“나 아침 안 먹는 거 알잖아. 초등학교 때부터 안 먹었구만.”


부엌으로 향하자 구수한 냄새가 올라왔다. 냄비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큰 닭 한 마리와 굵은 인삼이 있었다.

“아침 안 먹는다고…”

닭고기를 덜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내가 언제 이런 거 해달라고 했냐고… 나도 좋은 딸이 되고 싶단 말이야.”


노력해 봤자 좋은 딸이 될 수 있나 싶었다. 말 한마디에 오랜 노력은 금세 물거품이 되었다. 요즘 따라 가슴속에서부터 치미는 울컥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퍽퍽한 닭고기가 입안에 오래 남았다. 몇 번을 씹어도 삼켜지지 않았다. 결국 찬물로 밀어 넣듯 넘겼다.

“닭다리를 먹을 걸 그랬나…”


아직도 해가 쨍쨍한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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