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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May 24. 2022

채소 요리 좋아해보려고요.

선호가 뚜렷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살았다. 칵테일바에 가면 마티니만 마신다는 사람. 우연히 만난 고양이와 사랑에 빠져 일상의 중심에 고양이를 둔 사람. 친구들 사진 찍어주길 좋아하여 온갖 클라우드에 몇 천 기가의 역사를 담아놓은 사람. 음악가 김민기를 존경하여 한때는 줄창 김민기 음악만 듣는 사람. 그들의 선호와 삶의 방향을 곁에서 지켜보며 멋지다, 대단하다 감탄을 늘어놓았다. 


반면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알코올 쓰레기여서 잘 마시지 못하고. 고양이는 집에 자주 찾아와 만나긴 하나 몇 년이 지나도 멀리서 지켜보는 데면데면한 존재이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용량 강박이 있어 보관하고 싶어 하지는 않고. 음악은 이 노래도 좋고 저 노래도 좋은 그런. 


한 날은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자기는 최근에 채식에 관심이 생겨 비건 지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덩어리 고기와 각종 동물성 재료를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 다니고, 영양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며 공부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야기가 무르익고 시간이 길어지자 짜이 끓여줄까? 물었고 친구는 좋다고 했다. 우유에 각종 향신료와 당류를 넣어 끓였다. 너무 맛있다는 말에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친구가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다 문득 깨달았다. 짜이에 우유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화를 걸어 고해성사하듯 우유가 들어갔다며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짜이를 끓여준 정성을 마신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 무척 부끄러웠다. 채식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괜찮다는 그의 말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리에 관한 여러 가르침을 떠올려본다. 요리를 잘하려면 멸치 육수를 잘 내야 했고, 맛이 모자라는 느낌이 들 때에는 액젓을 넣거나 치킨스톡을 활용해야 좋았다. 제빵을 할 때에도 빵을 부드럽게 하려면 계란을 풀어 넣거나 유제품을 넣어야 했다. 이것들이 없으면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손님이 집에 왔을 때에는 맛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자주 쓰게 되었다.


그런 내게 채소 요리란 일종의 대학생이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한 종목이다. 보다 고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은, 쌓여있는 고정관념들을 많이 덜어내야 할 듯한. 그렇게 채소 요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누군가 무엇을 좋아하세요? 물을 때 거리낌 없이 채소 요리요! 하고 대답하는 때가 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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