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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May 29. 2022

대저택에 혼자 살면 외롭다.

키우기 난이도가 낮다고 알려진 식물, 아레카야자를 집에 들인 지 1년 정도 되었다. 처음엔 분명 풍성하고 줄기차게 뻗어나갈 것 같던 잎들이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 시들고 군데군데 갈변한다. 식물이 죽어간다는 경각심에 대야에 한가득 물을 받아 줘보기도 하고 쨍한 곳에 놓아보기도 했다. 어쩐지 더 잘못한 기분이 든다.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친구의 결혼식에서 식물박사님을 만났다. 제주의 한 편집숍에서 식물 몇 백여 종을 혼자서 살리는 분이다. 의사를 만나면 아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집에 아레카야자가 죽어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식물박사님이 집에 방문했다.


그는 크고 검은 통을 가져왔다. 식물박사의 왕진가방이다. 통 안에는 흙, 벌레를 쫓는 액체, 까마귀쪽나무가 있었다. 집이 어떤 환경일지 몰라 도구를 다양하게 챙겨보았고 까마귀쪽나무는 선물이라고 한다. 집을 둘러보더니 다음에는 어떤 식물을 가져와야 될지 알겠어요 한다. 저한테 식물을 맡기는 게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생각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보살펴볼게요.


그가 아레카야자를 마당으로 들고 나와 요모조모로 살핀다. 화분이 너무 크네요. 손으로 화분의 흙을 살살 파며 아레카야자를 꺼낸다. 이 집에 오기 전에는 작은 화분에 담겨있다가 큰 화분으로 옮겨졌나 보다. 작은 화분 모양 그대로 덩그러니 꺼내어진다. 그동안 더 뿌리내리지 않았구나. 살아있는 뿌리와 죽은 뿌리를 구분한다. 살아있는 것은 심이 굵고 감촉이 생생하고 죽은 것은 흐물흐물하다.


대저택에 혼자 살면 외롭거든요. 이 아레카야자는 이렇게 큰 집이 필요 없어요.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화분을 들며) 이 정도가 적당해요. 

적당한 크기의 화분과 알맞은 양의 흙, 필요한 정도의 햇빛과 물. 무엇이든 과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뒤 나의 생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사는 집은 크기가 적당한가? 소유한 물건들은 양이 알맞은가? 필요한 만큼 충만한가? 


집을 키운다고 생각이 크지는 않고, 물건을 채운다고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는. 퍽 외로워지는 저녁이다.

아레카야자가 살았던 대저택(왼), 아레카야자의 새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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