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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Jun 05. 2022

나의 시선이 당신에게 닿을 때

공연자의 격조콘 공연 후기

서울에서 하는 공연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세어 보니 서울에선 6개월 전에 문래동에서 노래했었다. 반년이 지났다니. 마음속에 긴장이 피어오른다. 어떤 옷을 입을까. 무슨 얘기를 할까. 간질거리는 하루들을 보냈다.


공연자로서 공연은 자주 일방적인 느낌이 든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이고요 어떻게 지냅니다 같은 얘기를 늘어놓는데 당신은 대답이 잘 없어서, 웃는 소리나 박수를 치는 강도로 맞은 편의 기운을 더듬을 뿐이다.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강한 공연은 더하다. 덩그러니 놓여 노래하는 중에는 당신은 분명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집요하게 실눈을 뜨며 보려고도 하지만 수확이 없다.


격조콘은 밝은 낮에 나무와 풀이 울창한 야외에서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듣는 공연이다. 서울에서는 실로 보기 드문 풍경이다. 더 특별하고 설레는 사실은, 이렇게 초록 가득한 밝은 곳에선 나도 당신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단 것. 매번 눈 뜨고 노래하지는 않지만 나의 시선이 당신에게 닿는 순간을 점점 더 아끼게 된다.


당신은 미소 짓기도 하고 와하하 웃기도 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눈을 감고 노래에 집중하기도 하고 노래하는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카메라 너머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당신이 과제에 시달리는 대학생인지, 반차를 쓴 행복한 직장인인지,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이십 대를 조금씩 채워가는지, 매주 화요일 저녁에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지, 서울에서 지낸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는지, 가성비 좋은 발사믹 식초를 알고 있는지. 노래할 때에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좋은 공연은 분명 당신으로 완성된다. 당신이 웃으면 나도 웃고 울면 나도 운다. 당신 때문에 긴장되기도 하고 마음이 갑자기 넉넉해지기도 한다. 주고받는 시선 속에 우리의 노래가 무르익는다. 오늘도 나의 시선이 닿게 해 준, 맞은편을 채워준, 다정한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오늘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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