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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Jan 11. 2023

이제는 만날 수 없네

예전에 찍어둔 필름 사진을 보려 하니 사진을 올려둔 사이트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비밀번호 찾기를 눌러 알아낼까 싶었지만, 그런 게 너무 귀찮을 때가 있다. 굳이 인증 과정을 거치면서 찾고 싶지는 않는.


그러다 최근에 앨범 작업 기록으로 필름 사진을 몇 장 찍게 되면서 예전 사진을 확인해야 될 때가 왔다. 사이트에 본인 인증을 하니 비밀번호 바꾸기 창에 커서가 깜빡인다. 이전에 쓰던 거 말고 새로운 비밀번호를 입력해달라고 한다. 새 비밀번호는 조만간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 머리에 새겨진 건 헌 것 뿐이다.


제주에 내려오고 나서 만난 사람 중에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다. 낮이고 밤이고 선글라스를 끼고, 길쭉한 하얀색 텀블러에 술을 담아 마시며 자신이 개발한 독주를 권하던 이. 내 노래 중에 선인장을 유독 좋아했던 이. 요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너무 맛있게 해서 조금만 더 친해진 다음에 레시피를 배워야지 싶었던 사람.


아직 비석도 생기지 않은 그의 묘 앞에 앉으니 눈물이 났다. 너무 일찍 간 거 아니에요? 그때 나한테 권했던 독주는 다시 마시래도 못 마실 거에요. 당신에게 선인장보다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지도 못했어요. 다시 그 요리들을 맛 본다면 좋겠지만..


그때는 5년이 지나도 보고싶은 사람은 만날 수 있을 줄 알았고, 연인들은 헤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많은 이름들도 까먹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제는 만날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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