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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Aug 24. 2022

라따뚜이, 겹겹이 쌓인 채소를 한입 베어 물며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음식 비평가 '안톤 이고'가 등장한다. 그는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며 식당들의 음식을 평가한다. 반쯤 힘이 풀린 눈은 피로에 찌들어 보이기도 하는데, 와중에 음식을 바라보는 깐깐한 눈살이 안경 너머에 레이저로 나오는 듯하다.


그런 그의 눈에 광명을 찾아주는 요리가 바로 라따뚜이(토마토, 애호박, 가지를 얇게 썰어 쌓은 후 토마토 소스와 함께 구운 요리)다. 안톤 이고는 라따뚜이를 한입 먹자 마자 오른손에 꼭 쥐고 있던 펜을 스르륵 놓아버린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밥상에 차려주던 그때 그 음식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직업정체성으로 무장한 인간이 말랑말랑해지는 순간이다.


대학생 때 정말 좋아했던 이탈리안 식당이 있었다. 학교에서 버스를 한 시간 타고 가야 했고, 한 그릇에 18,000원 정도에 양이 적어서 여러 개를 주문해야하는 곳이었다. 생활비가 넉넉지 않았던 터라 일주일 중 딱 하루 파스타 한 끼를 위해 나머지 날엔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거나 도시락을 먹었다. 그집 파스타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시험과 과제 스트레스가 뒤섞인 날들을 기운차게 살아냈다.


음식은 먹으면 소화되지만 먹을 때의 기억은 저장된다. 어느 시절에, 어디서, 누구와 먹었는지, 당시의 정서와 상태 등. 만족스러운 한 끼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좋은 기억으로 남고 다시 충만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안톤 이고도 겹겹이 쌓인 채소를 한입 베어 물며 일주일을 더 살아낼 황홀감을 느꼈을 테다.


채소들을 동그랗게 배열하고 에어프라이어에 구우니 먹음직스럽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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