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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Jun 18. 2024

풀씨들의 행진: 검질 매기의 늪

지난 이야기


풀씨에 하위 조직이 생기고 있다. 활동이 가장 활발한 팀은 잡초재난팀으로 잡초로부터 작물들의 안전을 지키는 모임이다. 혼자 밭에 가만 서있으면 풀의 푸르름에 눈앞이 깜깜한데, 조금 있다 보면 아이들이 하나둘 방석을 들고 와 풀을 매기 시작한다. 옥수수 쪽에 잡초가 장난이 아니에요- 도와주세요! 아니에요- 레몬타임 쪽이 더 심해요! 하며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한편, 잡초에만 신경 쓸 수 있는 이유는 물 주기 방식이 더욱 수월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도꼭지를 양갈래로 교체했고 물호스도 세 종류(스프링클러, 분사기, 빗물받이통 채우는 용도)가 되었다. 농자재 사장님의 도움으로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다. 물호스를 이고 다녔던 예전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이들은 역할이 분명해지고 있다. 주특기가 힘쓰기면 무거운 돌을 들어 나르거나 땅 파기를 하고, 수다 떠는 게 좋으면 삼삼오오 모여 노동요를 부르며 풀을 맨다. 혼자서 활동하고 싶으면 작물에 물을 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에는 작물 이름표도 만들었다. 아이들 모두가 밭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궁리하고 알아서 나선다.

옥수수는 우리들의 키를 훌쩍 넘겼다.


7월에 있을 활동 발표회 준비가 한창이다. 포스터 시안이 두 가지 버전으로 완성되었다. 포스터에는 아이들이 그린 작물이 들어가 있다. 메인 포스터를 정하려고 투표에 부쳤는데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서 모든 버전을 인쇄하기로 했다. 리플릿에는 텃밭 지도도 들어간다. 처음만 해도 가운데 원 정도만 가꾸려고 계획했었는데 그간 살림살이가 많이 늘었다.

ⓒ 2024. 이한빈. All rights reserved.


아이들의 실천탐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자칭 생태전문가인 한은 프로젝트 주제를 생태연못 만들기로 정하고 풀씨의 힘캐들을 모아 땅 파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점심 때나 방과 후나 계속 땅을 파대서 연못팀이 아니라 파묘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최근에 연못에 장구벌레가 생기는 걸 보고 미꾸라지를 들일지 대책회의를 하더라. 물을 채우고 나서는 흙이 가라앉으면서 맑아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어서 조만간 정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양은 텃밭의 빈 공간에 예쁜 꽃밭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생태연못을 만들던 곳에서 한가득 나온 돌로 틀을 만들고 꽃과 허브를 심었다. 정서지원 선생님과 풀씨의 힘캐들이 만들기를 도왔다. 다들 돌 나르기를 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볼멘소리를 냈는데 완성하니 뿌듯해했다. 양은 매일 아침에 자신이 만든 골뱅이 모양 허브&꽃밭에 물을 주며 돌보고 있다.


회장을 포함한 세 명이 발표회의 진행을 맡기로 했고 첫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을 본 아이들이 피드백을 작성했는데, 발표 내용에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결실을 향해 달려가는지 추가 반영되었으면 한단다. 1학년 한 명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잡초 알레르기가 생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잡초를 뽑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얼른 수확의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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