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네일아트 시켜드렸던 날, 할머니는 예쁘다며 한참 손톱을 봤던 날 몸매는 깡마르고 자그마했다.
정승 같은 눈매를 가진 친할머니와 다르게 외할머니는 '사랑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외할머니가 치매를 판정받았을 때,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서리야, 할머니 무서워. 기억을 잃는다는 게 너무 무서워."
"할머니 나는 기억해야 해! 내 이름 뭐야?"
"서리! 서리는 안 까먹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까르륵까르륵 웃어버렸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결혼할 때, 코로나 때문에 할머니가 오실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갔을 땐, 내가 알던 할머니와 조금 달랐다. 소녀 같은 부끄러움 대신 "고추가 튼실하다."라는 말을 하셨다. 평소라면 저런 말을 듣고 불쾌함을 표현하는 나인데 그것보다 할머니가 쓰던 말이 아닌 낯선 표현이 당황스러웠다.
다시 갔을 때 할머니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고 발그레 웃는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휠체어에 간신히 올려둔 다리는 겨울 나뭇가지 같이 앙상했다.
"할머니, 나 왔어! 나 누구야?"
"희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문 때문에 할머니가 듣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목청껏 할머니를 크게 부른다.
"아니, 할머니 나 누구야~!"
할머니, 나 이제 돈도 벌어서 요즘 유행하는 흑백요리사 식당에도 할머니 데리고 갈 수 있는데...
내 이름 기억해 줘. 할머니
*첫 문장 출처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