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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Dec 13. 2024

나만의 시간

소중해

연말이다. 연말이 되면 남편은 참 바쁘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회식과 야근들로 캘린더는 터질 듯한 김밥 속 김과 밥처럼 꽉꽉 차있다. 연애를 할 때는 그의 바쁜 12월이 이상하게 보였다. 그의 삶은 내가 살아온 궤적과는 굉장히 달랐다. 여하튼, 몇 년이 흘렀고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삶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남편은 바쁘다. 그가 회사를 퇴사해야만 여유로운 12월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밥을 먹이고 나의 밥을 챙기고 아이와 뒹굴뒹굴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가 자야 할 8시이다. 5시 퇴근 후 부지런히 집에 와서 아이와 보내는 저녁시간은 고작 2시간 반 남짓이다. 요즘 아이는 할 줄 아는 말이 늘어서 대화를 하는 재미가 있는데 이 시간을 조금밖에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아주 많이 아쉽다. 아이에게 "엄마 회사 다녀올게!"라고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엄마는 어디 가지?"라는 물음에 아이는 "회! 사!"라며 구김살 없이 대답한다. 아이의 대답에 마음이 씁쓸하게 시리다.


매일 저녁 주어지는 2시간 반을 어떻게 해야 애착에 문제없이 키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내가 내린 현실적인 결론은 이 시간만은 핸드폰에 손을 대지 않고 아이와 책을 읽고 밥을 먹고 대화하며 보낸다이다. 아무래도 아이는 미디어가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일 소중한 2시간 반에는 미디어가 낄 틈이 없이 아이와 온전히 상호작용하며 보낸다. 사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어쩔 땐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도 주가 되지 않도록 애써본다.


어제도 아이와 함께 추피 책을 읽었다. 추피는 생활이야기인데 펭귄가족이다. 할머니네 집 가는 이야기, 동생이 생긴 이야기 등 우리 일상과 밀접해서 아이와 대화하며 읽기 좋고 무엇보다 아이가 좋아한다. 어제는 추피 엄마가 동생을 임신한 내용의 책을 읽었다. 나도 임신을 했기에 아이에게 "엄마, 배 속의 아이는 남자야 여자야?"라고 물어보면 "아기 여자!"라며 대답한다. 그래놓고 아이에게 너는 "남자야 여자야"라고 물어보니 "여자!"라고 대답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뢰도가 없는 너(남아)의 대답에 한바탕 웃어본다.

아이는 그렇게 8시에 잠이 들었고 8시 반부터 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블로그도 쓰고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알찬 시간으로 꽉꽉 채웠다. 10시 정도가 되었을 때, 애써 모른 척했던 쌓여있는 주방과 쓰레기통들이 보였다. 헤드셋을 끼고 올드팝을 크게 틀어버렸다. 고개를 왼쪽 오른쪽 왔다 갔다 하며 30분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 시작 전에 보이차를 조금씩 우려 놓았다.

내가 생각했던 구역의 청소를 끝내고는 보이차를 천천히 마셨다.


꼴깍꼴깍


행복감이 스르르 몰려왔다.


헤헤


따뜻한 차가 나의 몸을 감싸고 체온이 스르르 올라간다. 따뜻함이 좋아서 차를 한 잔 다시 우려 본다. 식탁에 앉아서 차를 천천히 우리며 멍한 상태로 벽을 바라본다. 요즘 회사 일도 그렇고 경기도 그렇고 뉴스를 틀면 시끄러운 일들로 가득 차 있다. 또 아이와 매일 하는 일상은 우당탕 탕 시끄럽기 여지없다. 이런 세계에서 잠시 한발 물러나서 나의 세계로 들어간다.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주는 20분의 시간이 소중하고 소중하다. 생각해 보면 SNS를 20분 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휴식이기도 하다.


띠. 띠. 띠. 띠


남편이 도어록을 연다. 오늘 따라 일찍 온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남편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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