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역시 출근을 하려 7시 전에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역에서 셔틀버스를 탈 수가 있는데 남편이 넘어질 수 있다며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고맙다며 집을 나섰는데 띠용... 차를 끌고 역까지 갈 수 있을까? 걸어가도 문제고 어쩌지라는 생각이 바로 들정도의 눈이었다. 쌓인 눈은 꽤나 되었고 계속해서 내리는 눈발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회사에서 오지 말란 문자는 없으니 가야겠다 생각하며 큰 도로로 나섰는데 무서웠다.
스산하다.
동네 아파트에서 트럭이 나오다가 나오지 못해서 가만히 서있다.
동네 스타벅스 근처의 나무가 부러졌다. 덕분에 차들은 중앙선을 넘어서 곡예운전하고 있다.
차로 약 5분도 안 가는 동안 많은 광경이 목격된다. 차에서 내리려고 했으나 눈발이 매서웠고 회사셔틀이 도착예정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20분이 지나도록 차는 오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하면 늦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같은 다른 계열사 직원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기사님이 동네에서 출발이 어렵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가보려고 애써본다.
그렇게 눈길을 아장아장 걷고 있을 때, 빛처럼 셔틀버스가 왔다. 아저씨는 빵빵거렸고 같이 셔틀을 타던 분을 애타게 불러서 그렇게 셔틀을 탈 수 있었다.
매번 가는 길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지 아슬아슬 조심조심 셔틀이 운행된다. 회사를 가려고 좌회전을 하는 그 도로가 마비가 되어있다. 차들은 움직이지를 못 하고 곳곳에 멈춰버린 차들이 보인다. 유턴을 못하고 차들은 멈췄고 사고가 난다. 이런 상황이 마치 영화 같아서 나의 상황을 주변에게 알리려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직장동료들에게 연락해서 조심하라며 안부를 전한다. 기사님은 언덕까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우리를 건너편에서 살포시 내려준다.
임산부배지가 달린 가방과 손을 피가 통하지 않을 듯 꽉 주어내곤 걸어본다.
"넘어지면 진짜 안 돼... 병원 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천천히 조심히..."
조심스럽게 걷다 보니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않았는데 빨간색 불빛이 나를 비춘다. 주변 차량들은 모두 다 이해한다는 듯 잠시 여유를 내어준다. 부지런히 부지런히 신호를 건너곤 이내 숨을 크게 내쉰다. 아직 나에겐 언덕길이 남았다. 제설은 완전히 되지 않아서 마치 잠실 빙상장에 온 것만 같다. 그곳과 다른 건 언덕이라는 것과 나는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신발이 운동화라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티니핑월드가 아니라 겨울왕국이다. 저곳을 뚫고 올라가야 한다니 웃음만 나온다.
미끌미끌 앞사람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나는 순간 미끌려서 온몸이 경직된다. 자세를 더 낮춰 허리는 굽어진다. 내가 크게 미끄러지면 뒷사람들도 문제가 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배가 된다. 어떻게 회사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웃긴 건 그 와중에 나는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어이없고 약간의 짜증이 난다. 회사에서 유연하게 출퇴근을 적용한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지각을 하지 않았다니 내가 너무 직장인 같아서 짜증이 확 나버렸다.
익숙하게 컴퓨터를 켰는데 정전이다. 정전
오호.......... 20분 정도가 흘렀을 때 컴퓨터가 켜지긴 했지만, 이 상황들이 너무 웃기고 어이없고 역설적이게 창 밖으로 보이는 눈은 너무나 예쁘기만 하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라며 업무를 치는데 11시 정도가 되자 두통이 아주 심하게 오기 시작한다. 어제 퇴근길의 긴장감, 새벽의 아이의 울음 그리고 오늘 출근길의 긴장감들이 쌓여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일을 해내는 것 그게 직장인이고 어른이겠지?
나의 할 일을 마치고 산부인과 정기검진에 왔다. 임신성 호르몬 때문에 저혈압이 있는 것 같다며 순간순간의 어지러움에 조심하라고 한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항상 듣는다. 집에 가서 하는 일이라곤 밥을 먹고 눕는다. 아이의 목욕, 식사 등은 모두 남편의 몫이다. 현재는 위임할 일들을 모두 위임하는 것이 나의 컨디션을 지키는 일이다. 그게 나에게 가장 중요하니까
며칠을 푹 쉬고 나니, 아침엔 조금 이나마 컨디션이 나아졌다. 책 한 권과 노트북을 품에 안고 외근을 나선다. 지하철 안에서 읽기 편한 에세이를 30분 정도 읽고 나니 맑아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컨디션만 좋으면 매일 책 읽고 매일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 올라온다. 욕심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임신기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에 누군가의 삶을 엿보면서 그들처럼 하지 못한다고 비교하며 아쉬워하지 말자. 나의 상태는 나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어제, 오늘 잠시 멈췄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포기하지 않는 성장형 사고이듯 우리 삶에도 그것을 적용하면 된다. 지금은 느려 보여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걸 내가 알고 행하면 그걸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