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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Nov 23. 2024

자 다시 시작이야. 입덧이이

임산부 나대지 않습니다...

  얏호~! 금요일이다. 심지어 이틀연속 컨디션도 꽤나 괜찮다. 장담할 수 없는 임산부의 컨디션 치고 8시에 자서 6시쯤 일어날 때 꽤나 상쾌하다. 아침엔 독서와 글쓰기를 했다. 퇴근 후에 아이와 신나게 놀고 밥도 먹고 책도 읽어야지. 놀이공원 가기 전날의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퇴근했다.

  잠시 누워있다가 남편과 하원한 아이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아이는 손에 과자를 잡고 입에 와구와구 넣은 채 나에게 "앙뇽"이라며 인사를 한다. 단어 단어로 표현하는 너의 조그마한 입술이 웃겨서 피식 웃어본다. 어느 때처럼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아이에게 선물하곤 아이와 책을 읽는다. 책을 5권은 들고 와서 많이 읽어달라는 너, 솔직히 조금 피곤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


  오늘 먹고 싶은 것은 없냐는 남편의 물음에 평소에 좋아하던 짜장면을 말해본다. 오늘은 기운도 좋고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남편은 임신으로 못 먹던 아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당장 포장하러 단골집으로 뛰쳐나간다. 아이와 책을 읽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린다. 야무지게 쟁반짜장을 둘이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진짜 컨디션 좋아졌다.'라며 설레발을 한가득 앞으로 닥칠 일은 하나도 모른 채 와구와구 먹어본다.


  7시 반 어느 때와 다름없이 모래시계가 끝나가는 것처럼 흐물흐물 거실에 누워버린다. 남편은 역시나 어제와 똑같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곤 아이와 함께 들어가서 누우라고 말한다.




어... 그래야겠지?

  아이 양치도 해줄 기운이 없어 아이칫솔에 치약만 간신히 짜주고는 "아빠에게 가서 이 닦고 침대로 와. 오늘은 같이 자자"라고 말하고 침대에 먼저 눕는다. 분리수면이고 뭐고 우선 지금은 눕는게 중요하다. 뒹굴뒹굴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머리를 연신 쓰다듬고 훌쩍 길어진 종아리를 이리저리 만져본다. 그러다가 정말 임산부의 모래시계가 다 끝나버렸을 때, "엄마, 이제 잘게"라며 아이를 등지곤 눈을 붙인다. 아이보다 먼저 자버리는 임산부



그렇게 1시간쯤이 흘렀을 때, 토할 것 같음에 일어난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오늘 망했구나. 내가 또 임산부임을 망각하고 내 컨디션에 자만했구나.


  급하게 입에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효소를 털어 넣고는 연신 가슴팍을 퍽퍽 쳐본다. 이리저리 뒹굴뒹굴 뒹굴어본다. 답답하다. 답답해. 사실 이 상태에서는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그냥 굴러다니는 수밖에 없다. 체덧이라고 불리는 입덧의 한 종류인데 체덧에 당첨된 날은 소화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 잠을 잘 수 없다. 고로 나는 새벽 언저리에 눈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던 콜라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벌컥벌컥 마셔본다.




제발... 나대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체덧을 빠르게 내려주신다면, 제가 앞으로 식사를 조금씩 해보겠습니다. 나대지 않을게요...

  믿는 신도 없건만 마음속으로는 이리저리 아무 말이라도 생각해 본다. 어휴 답답해라. 진짜!



  이건 방법도 없어서 아이 옆에서 뒹굴뒹굴해본다. 오랜만에 자는 아이의 얼굴을 지켜보는데 제법 많이 크기도 한 아이가 신기하기만 하다. 기침을 많이 해서 등을 두드려주는데 아이가 순간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엄마가 있어서 기분이 좋은지 나를 향해 씽긋 웃어 보이곤 눈을 다시 감는다. 체덧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지만 과거 첫째를 임신했을 때가 떠오른다. 지금보다 훨씬 심한 입덧이었고 세상을 원망했다.




방금 아이가 나를 향해 웃는 모습을 보곤 아... 입덧의 결과가 저 작은 생명체이지.




견뎌내야지. 맞네. 지나간다. 맞아 지나가. 



  당분으로 코팅된 혓바닥이 텁텁하게 느껴져 다시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향한다. 위 아래 쓱쓱쓱쓱 양치를 야무지게 한다. 대망의 혓바닥~ 쓱쓱쓱 '오늘 따라 양치도 역하게 느껴지네'라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짜장면이 밖으로 나오려 요동친다. 하... 나오려는자 vs 토하고 싶지 않은 자... 오늘은 나오려는 자가 승리해버렸다. 


지나가긴... 뭘 지나가...


  토하고 나서도 여전히 답답하고 얹힌 가슴이 힘들어 초점이 나간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너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너를 훈육하고 사랑하며 돌보는 이 시간들은 나를 성장시킴을 느끼고 있다. 예컨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어 전보다 책임감도 행동도 배움도 노력도 더 높아져만 간다. 






까스활명수 두 병 원 샷 하고 시원하게 트름 하고 싶다.

(설명 : 임산부는 가스활명수를 먹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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