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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Nov 11. 2024

벅차다는 의미를 알게 된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아이를 출산한 당일이라고 바로 답할 수 있다.


출산 전날, 그날따라 배가 고파 잠이 들지 못하고 밥을 한가득 차려 먹었다. 아침 수술까지 금식시간을 계산하며 밥을 야무지게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감성적인 남편을 위해 출산 전 영상을 편집하였고 내 수술시간에 맞춰 예약발행을 해두었다. 모든 일을 끝냈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가서 누웠다. 극강의 T

잠이 워낙 많고 둔한 산모였던지라 태동이 세더라도 푹 잠들었었다. 하지만 본인이 나올 디데이에 임박했다는 것을 아는지 아이의 태동은 어마어마하게 셌다. 왼쪽 갈비뼈를 열심히 차는 아이 덕분에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에서 멍하게 앉아있었다. 내일이면 진짜 애기를 만나는 게 맞나? 수술은 아플까? 괜찮나?라는 생각을 하며 병원도착 2시간 전에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비몽사몽 눈을 떠서 빨리 수술하고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생의 첫 수술이었고 수술동의서를 작성하였다. 동의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동의해야만 하는 서류를 보며 어이없어 웃었고 그렇게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첫 수술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이를 만날 생각에 그랬을까? 차갑게 느껴지는 불빛들을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마취를 하기 위해서 새우등자세를 요청하셨지만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온 산모는 그 자세마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마취를 하는 도중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들은 생각보다 금세 지나갔고 참을만했다. 다만, 순간적으로 패닉이 왔는지 숨이 안 쉬어지는 것만 같아서 숨이 안 쉬어져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다가 마취가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통에 익숙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걱정하지 마 엄마"라는 소리와 함께 수술은 시작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아이가 잘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정신없이 나를 깨우는 목소리들 사이로 물었다.


"아이는요?"


"아이는 잘 태어났고 신생아실로 갔습니다. 산모님 어쩌고 저쩌고 ~~~?"


"아 그럼 됐어요. 그냥 남편한테 다 말해주세요. 저 졸려요. 자도 되죠? 잘게요."


그렇게 나는 병실로 갔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수고했다며 말을 걸자 너무 졸려 잘래라고 말하곤 계속 자버렸다. 출산 전날 자지 못한 탓에 아침에 끝난 수술이 지나고도 점심쯤에 잠시 일어날 수 있었다. 점심에 일어나서 주변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걱정하는 그들에게 나 생각보다 괜찮아라고 말하며 말이다.

아이를 보고 너무 행복해서 신이 난 남편은 이어폰을 끼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상통화로 아이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내 몸에 생긴 수술 자국을 보며 남편은 속상해했지만, 딱히 보이는 곳도 아니기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 마취가 풀려오는 고통도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터져버린 내 입술과 퉁퉁 부어버린 내 얼굴을 보며 우리 엄마는 나를 걱정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엄마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복합적이며 감사한 날이었다.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은 모든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출처 : 네이버 사전

벅차다는 사전적 의미를 처음으로 진심으로 알게 된 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았다. 또 마치 내가 뭐라도 된 마냥 행복했다. 뒤에 일어날 육아를 걱정하기보단 당장의 아이가 귀해서 그것만 생각하기 바빴다. 조건 없는 주변의 축하를 받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한 날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며 세상을 보는 관점도 나를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이타적인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이렇게 아이가 태어난 날은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 날이다.


벌써 2년도 더 된 그 날을 회고해보며 글을 마친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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