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달리 남편은 집단주의 성향이 눈에 띈다. 그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그에게 어떤 것이 행복하냐 물으면 가족들과 여행 다녀온 이야기, 과거에 가족들과 있었던 일화 등을 풀어놓기 일쑤이다. 그에게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작은 목공소 차려서 가족단위의 손님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임신과 함께 남편의 집안일 비율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원래도 많이 했는데 이젠 80%는 그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SNS에서 아빠들이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들이 물으면 '아기 엄마 오면, 말할게요.'라는 말들을 종종 한다고 한다. 아이에 대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엄마가 온 이후에 대답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대답을 가지고 사람들은 왈가왈부를 시작했다. 각자의 집에 맞게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육아이다.
다시 돌아오면, 출퇴근이 나보다 더 유동적인 남편은 아이의 병원을 전담해서 다닌다. 아이의 기침이 심해지면 남편이 알아서 오픈런을 하곤 병원을 다녀온다. 나보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을 더 자주 만나는 남편이다. 고맙기도 하고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재가 참 슬프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이런 상황들을 꽤나 자주 겪을 것이다. 나의 몫을 더해서 하는 남편은 체력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나는 5개월 차 임산부가 되었고 앞으로 갈길이 멀지만 4개월 정도가 남았다. 아마도 3개월 정도는 회사를 더 다닐 것 같은데 첫째를 양육하면서 이게 과연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오늘 퇴근을 한 남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울상'이었다. 평소에 밝디 밝은 사람이라 훅 떨어진 텐션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가 있다.
오늘 저녁에 닭발 먹으면 안 돼?
"오늘...? 저녁으로 고기 먹으려고 사 왔는데... 닭발?"
아... 오늘 조금 꿀꿀해서... 아 아니다... 명절도 있으니까 우리 돈도 아껴야지...
"아 아니야. 재우고 글 하나만 잠깐 쓰고 그 뒤로 갔다 오자!"
평소에 텐션이 워낙 높은 사람이라 저런 식으로 말할 때는 확실하게 풀어주어야 한다. 체력적으로 힘듦이 있었고 회사에서는 정신적 힘듦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저 대화를 나누고 나서도 우리는 아이가 자기 직전까지 20분 정도를 제외하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적이 없다. 아이가 어지른 퍼즐을 정리했고 아이를 씻겼고 우리의 밥을 차리고 먹고 치웠다. 끈적끈적 거리는 바닥을 스팀청소기로 청소하고 매트에 아이가 떨어트린 빵 부스러기를 청소했다. 빨래를 예약해 두었고 아이 어린이집 간식을 준비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아무리 텐션이 좋지 못하더라도 할 일을 하나 둘 해나갔다.
이제 아이를 재웠고 각자의 시간을 잠시 즐겼으니 밖에 나가서 회포를 풀려고 한다. 어쩌다 보니 남동생도 같이 살고 있어서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그래봤자 10분 거리 닭발집이지만 덕분에 숨통이 트인다.
남편에게 묻는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사실 별 말 아닌데 누군가가 나에게 공감을 해줄 준비를 한다는 것 그 자체로 사르르 녹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시시콜콜 요즘 느끼는 감정 등을 공유한다. 내가 좋은 부모인지, 괜찮은 아내인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난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런 고민이 있어.'라는 생각을 가장 가까운 남편과 나눌 수 있다. 아쉬운 건 우리 모두 일을 하고 아이를 케어하면 우리에게 남는 시간은 고작 얼마 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오늘도 고생했고 덕분에 행복했어.'라는 따뜻한 한 두 마디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