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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Nov 06. 2020

평범한 매일 특별한 순간

환대의 기록, 추억의 풍미


마음이 한층 깊어지는 순간이 있다. 서로의 '어떤'을 조금 더 공개하는 일처럼. 그녀와 나는 같은 장소에 대해 저마다의 그리움을 품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가키후라이(굴튀김). 빵가루를 잔뜩 묻혀 둥글고 통통하게 튀긴 굴에 1/8로 조각낸 레몬을 꾹 짜서 휘릭 두르고 타르타르 소스를 듬뿍 찍어 한입에 넣다 입천장이 홀랑 까지고 마는. 까잇거 차가운 생맥주 한 모금으로 벌컥 입천장을 달래가며 아삭아삭 경쾌한 소리를 내는 양배추를 한아름 젓가락으로 집는 그런.

시작은 그 굴튀김이었다. 일본 동네 조그마한 이자카야 카운터석에 앉아, 여기 일단 생맥주 한 잔이요(도리아에즈 나마 비루)! 라고 외친 다음 갓 튀겨 나온 굴튀김을 안주로 먹고 싶다는 말. 날이 차가워졌으니 기름기 오른 회도 시키고, 술 마시다 보면 탄수화물도 땡길테니 야끼소바도 먹자고.

하지만 우린 지금 그 장소에 갈 수 없다. 코로나19가 유발시킨 판데믹이 모든 것들을 뒤죽박죽 엉망이 되게 했고 당연하고 손쉽게 여기던 일들을 불가능하고 어려운 것들로 만들었다. 여권은 오래오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어 빛도 들지 않는 서랍 속에 고요히 누워있다. 공항까지의 거리가 이토록 멀었음을 실감하는 시절.

그럼, 집에서 직접 해먹을까?

그녀가 통영에서 올린 자연산 회와 굴이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낮 12시 59분 우리집 현관에 도착했다. 약 15분 후 그녀도 우리집 현관에 도착했다. 그 후 이어진 약 7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안주목록.

생선회☞생굴☞우럼마표 백김치☞우럼마표 초롱무 김치☞야끼소바☞굴튀김☞점보 치즈 달걀말이☞굴무침&밥

알콜목록.

맥주☞배다리막걸리☞산토리 가쿠빙 하이볼☞발베니 12y 하이볼

환대의 기록은 사람과 장소를 추억으로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추억이 맛으로 새겨질 때 추억의 수명은 무한대로 길어진다.

이 코스 다음 번에는 진짜 일본 이자카야에서 하자. 꼭이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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