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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Nov 07. 2020

평범한 매일 특별한 순간

새우 껍질을 까며

낡은 후라이팬에 호일을 깔고 그 위에 굵은 소금을 소복히 담은 후 신안에서 올라온 생새우를 빙 둘러 구웠다. 탁탁 소금 튀는 소리가 나더니 새우 몸통이 붉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잘 구워진 새우의 껍질을 까 먼저 엄마 입에 하나 넣어 드리고 또 하나 까서는 열두살 딸 입에도 넣어 주었다. 세개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 입에도 껍질이 벗겨진 새우살을 넣는다. 탱탱한 육질을 씹으니 달고 짙은 내음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줄곧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우 껍질을 까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저녁이 내내 이어지는 그런.

오늘은 종일 아빠 생각이 나 눈가가 짓무르는 것만 같았다. 내 아빠의 병은 완치될 수 없는 희귀병이었고 어떤 상황이 와도 기도 삽관을 통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당신 스스로 연명치료 포기 서류에 싸인을 했다. 아주 오래전 암으로 엄마를 보낸 고종사촌언니는 기도삽관도 좋고 의식이 없어도 좋으니 엄마가 1년만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는 말을 훗날 전했다. 내 아빠는 당신 병환이 불치의 것임을 알았으나 꼭 나아 집에 갈거야, 갈거야, 되뇌이곤 했다. 아빠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병마가 아빠의 모습을 더 초라하게 바꾸고 고통의 한복판으로 몰고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생의 길이가 조금만 더 길어지기를 바랬을까. 아빠 병은 폐에 고농도의 산소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만 했기 때문에 제대로 음식을 먹는 일이 어려웠다. 생전의 내 아빠는 뷔페  식당에 가면 초밥을 스무개도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뱃고래와 식탐의 크기가 큰 사람이었는데.  

슬픔은 그렇게 고인이 생전 즐겨 드시던 것들의 흔적에 깃들어 내 식도를 아리게 훑고 지나간다. 끝내 한 번 더 사다 드리지 못 했던 카스테라를 빵집에서 발견할 때, 내 엄마와 내 딸에게 구운 새우 껍질을 까서 입에 넣어줄 때, 문득 깬 새벽녘 위장이 촐촐해 따른 소주 한 잔에. 3년전 암으로 투병하던 이종사촌오빠가 소천하던 날 아침, 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단다. 그 날 아들을 간병하고 있던 큰외삼촌은 병원 편의점에서 햇반을 얼른 사와 렌지에 데웠고 오빠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한그릇을 달게 비웠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큰외삼촌은 아들의 마지막을 예감했다고. 그래도 작별하기 전 먹고 싶다고 한 걸 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평온해 졌다고 큰외삼촌은 그랬다. 위암이었던 오빠는 투병 내내 음식을 먹을 수 없어 80키로 정도 나갔던 체중이 반쯤 줄었었다.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 그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건 더없는 은총이다. 언젠가는 저마다 작별 인사를 해야할 순간이 다가 오겠지만 우리가 함께인 동안은 새우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고픈 마음을 잃고싶지 않다. 그러니 제철 음식을 부러 마련하는 일에 게으름 같은 거 붙여주지 말자고, 맛있는 음식을 향한 욕구에 찬 물을 끼얹지도 말자고, 잘 먹으며 즐겁게 살자고, 어느새 접시에는 새우 머리가 수북하게 쌓였고 내겐 그 광경이 단란의 증명같아서 코끝이 시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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