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 Jieun Lewina Oct 30. 2020

Lewina's 책일기, 책읽기

이의진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간밤에 보성증청우전을 내렸다. 어린 녹차잎을 淸明과 立夏 사이의 절기인 穀雨(양력 4월 20일경) 전후에 제다하여 뜨거운 솥에 찾잎을 덖는 방식이 아 증기로 쪄낸 증청우전은 청량한 풍미가 특징이다.

보통 茶는 1포, 2포, 3포, 4포 내릴수록 향과 맛이 바뀌는데 보이차나 홍차는 여러번 우려도 그 지향점이 일관적인 것에 반해 녹차는 거듭해 우릴수록 변화무쌍하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처럼. 보성증청우전의 1포째는 신선하고 청량한 향(살짝 꽃향도 느껴짐)과 함께 녹차 특유의 쓴 맛이 감돌며 고소한 피니시가 이어지다, 2포째엔 찐밤 같은 묵직한 맛에 여전히 쓴맛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다 3포째엔 쓴맛이 누그러져 텍스쳐가 한층 부드러웠고 섬세한 단맛이 전해지더니, 오늘 아침 내린 4포째엔 부드러움의 완성이랄까 생생해서 다소 예리하게 찌르던 녹차의 쓴맛이 죄 사라져 맛과 향의 균형감이 편한하게 다가왔다. 차의 빛깔은 더 맑아졌음에도 그 질감은 촘촘해진 4포째의 보성증청우전을 마시며 요즘 읽고있는 이의진 선생님의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을 떠올렸다.

이의진 선생님은 행성B의 책 표지에 쓰인 글귀처럼 '쓰는 존재' 이다. 쓰는 존재로 살고픈 내가 쓰는 존재가 써내려간 문장을 좇으며 공명의 기쁨을 선사 받았음을 고백한다. 나와는 확실히 다른 삶이지만 나와 유사한 면모를 발견하고선 지그소 퍼즐의 한 면을 맞추듯 대어보고 소리없이 웃고 울었다. 지난 시간을 강퍅이란 단어로 심플하게 퉁칠 수 있게 된 건 그 시간이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매 순간 혼곤한 좌절과 멀미나는 흔들림 속에서 죽음을 한층 가까이 또 친숙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삶, 아주 오래전의 미래였던 그 순간들을 이제는 담담히 심지어 맑고 청량하게 써내려 갈 수 있는 건 흐림이 언제까지나 이어질리 없고, 차차 맑음을 예감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음에 다름 아니다.

처음으로 똑딱이 카메라를 내 눈에 대보던 날을 기억한다.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으로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흐릿했다. 그러다 두개 세개로 우룽거리던 윤곽이 천천히 맞춰지며 마침내 제대로 선이 그어진 피사체와 풍경이 내 눈에 담겼을때 몸이 떨릴 만큼 감동했다. 그게 뭐라고. 뭉툭하고 무겁고 내동댕이 치면 산산이 부서질듯한 그 물체가 내게 세상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남길 기회를 주고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어쩐지 부끄러워지던 그날, 삶의 악의에 철썩철썩 연타를 맞아 쩔쩔 매다 이를 드러내며 힘줄이 튀어나올 만큼 나를 휘감는 분노와 슬픔에 이까짓 삶이라며 내던지고 싶어질 때마다 똑딱이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통해 처음 바라본 세상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는 촛점을 맞출 줄 아는 사람들이다. 촛점이 맞춰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걸 몸으로 터득한 사람들이다. 터치 한 번으로 순식간에 촛점이 들어맞고 HD급의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최신형의 도구가 존재하는 시절이라지만, 느릿하고 들고다니기 버거운 삶의 카메라를 여전히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촛점의 미덕을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폭풍 뒤에 비록 잠깐 일지라도 폐에 깨끗한 공기가 차오른다는 메세지를 건네주는 선생님이라면 촛점의 미덕을 알고도 남음이리라.

穀雨의 의미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삶에 내리는 비는 봄비처럼 마냥 곱지만은 않지만 지나고 보니 대부분의 비는 내게 穀雨였다. 무엇보다 영원히 쏟아지는 비는 세상에 없다. 차를 음미하며 그녀의 삶이 4포째의 보성증청우전 차저럼 적당한 온도, 맑은 녹색, 부드러운 밀도로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이어지길 기도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글의 품격과 삶의 지혜를 얻고 싶다고도. 물론 막걸리가 찰랑찰랑 담긴 와인잔도 좋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한 음절의 위로, 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