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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Oct 31. 2020

평범한 매일 특별한 순간

채워야 가능한 것들

본인이 가진 것이 많지 않음을 무기로 삼는 사람들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저마다 나름의 결핍을 껴안고서 그 틈을 메꾸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들을 하며 살아간다. 내 경우엔 외모 컴플렉스를 비롯, 여유로운 경제 상태에 대한 갈망, 다소 진폭이 큰 감정의 변화 및 지적 허기를 넘어 지적 허영심 같은 걸로 오래 앓아온 사람인 데다가 기묘한 부분에서 완벽을 추구 한다던지 뒤틀린 결벽증 비슷한 걸 가지고 있어서인지 늘 쫓기는 기분 속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행하며 여기까지 왔다.

나 스스로를 덩치만 컸지 속은 텅 빈 항아리라  생각했고 그걸 채우려 계속 분주하게, 그게 뭐가 되었건 자꾸자꾸 들이 붓는 데 안간힘을 썼다. 걷고, 읽고,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만들고, 끝없이 글을 쓰며. 그런 과정에서 손해를 보기도, 상처를 받기도, 배신을 당한 적도 있다. 어떤 사람들에겐 그런 내 모습이 허세로 만연한 버둥거림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얼마 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을지에 대해선 떠올려 보지 못했으리라. 사실 그 시간과 노력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 보다는 8할은 내 만족을 위한 것이었으니 딱히 그게 서운하지는 않다. 심지어 내가 애써 획득한 정보나 지식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에도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묘한 뿌듯함 마저 느낀다. 이것도 어쩌면 인정 욕구일지 모르겠다만.

많은 걸 가진 분들이 좋다. 물리적으로든 지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치밀하고 자연스레 채워진 분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풍요로운 사람들에게 스며있는 낭창낭창한 여유를 동경한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오만과 편견은 가진 자의 심술이 아닌 결핍의 구멍이 큰 사람의 어깃장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들은 가진 것이(배운 것이, 경험치가) 많지 않음을 영리하게 이용해 나는 그런 걸로 열등감 같은 거 느끼지 않아! 라며 짐짓 의젓한척 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달랐다. 스스로의 변덕을 섬세함으로 포장하거나, 괴랄한 정의를 내세워 자신의 공명정대함을 주장하고, 자신의 결핍이야말로 공감 능력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토로하곤 했다.

물론 경험이란 몸소 체험한 것만이 전부는 아닐테지만, 글이나 영상 등 간접적 경로를 거쳐온 경험과 스스로 겪고 체득한 경험의 결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감 능력이란 대개는 열패감과 질투가 만들어낸 어두운 예민함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처지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사특하게 이용해 유리한 위치에 서서 상대를 좌지우지 하며 군림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면 악은 병균처럼 내게 번져 심신을 허약하게 한다(가스라이팅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다시 말하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좋다. 나 또한 어떤 방향으로든 되도록 많은 것을 갖추기 위해, 가지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고, 부족함에서 기인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핍'을 향한 부심이 아님을 그 과정 중 깨달았다. 많은 걸 갖고있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라는 말이 아니라 빈 틈을 채우려 선한 의지가 바탕이 된 노력을 조금도 하지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자세라 생각한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RPG 게임 속 아이템처럼 사용하는 사람에겐 곁을 주고싶지 않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나를 향해 주제를 모르는 허세나 부린다며 비난한다 해도 뭔가를 채우려는 나의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진솔하게 허기를 느끼고 그걸 힘껏 성실하게 채우려 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할 자격이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려는 쪽이 낫다. 애시당초 부족한 사람에겐 버릴 여유조차 요원한 법이다. 언젠가 마음껏 버릴 여력을 키우기 위해 당분간은 이렇게 목마른 듯 나를 채우며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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