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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Oct 29. 2020

한 음절의 위로, 술

프레스코 발디 루체 델라 비체 BDM

프레스코 발디, 루체 델라 비테 BDM
이태리, 산지오베제 100%

100%의 어떤 것에 대하여.

'100'이라는 숫자나 '완벽'과 같은 단어가 건네는 무게감이란 것이 있다. 사실, 이거 좀 부담스럽다. 뭐랄까 나처 평범이란 두 음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100%의, 혹은 그에 가까운 존재와 우연히 한 공간에 함께할 때면 의기소'침'이 혈자리를 콕콕 찔러 내 존재의 부피가 감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100 이라는 숫자의 견고함은 완전이란 단어가 품고있는 우직함과 드넓은 아량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두를 향한 열린 마음, 그것이야말로 100의 진정한 가치인 듯 하다.

2017년 이혼 1주년 즈음 좋은신 분께서 700년이 훌쩍 넘어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태리 와인 명가 「프레스코 발디」의 '루체 델라 비테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위로주(혹은 수고주)라며 글라스에 채워 주셨다. 루체 BDM은 이태리 토착 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 100%로 그려낸 한폭의 그림같은 와인으로, 와인 보틀의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디자인은 베네통과 콜라보를 했다고 하며, 다채롭고 쨍한 색감의 향연이 특징인 베네통이 자신의 이미지를 고집하지 않고 100%만이 가지는 심플하고도 직선적인 느낌에 충실하단 생각이 들어 몹시 감탄했다.

따스한 인류애, 우아한 침착함, 모나지 않은 의리, 언제든 유연한 매칭이 가능한 다정함과,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이어질 긴 피니시, 그건 위로의 시간에 다름 아니었다. 루체 와이너리는 이태리 몬탈치노 지역에서도 비교적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높은 경사를 이용한 민첩한 배수로 미네랄리티가 돋보이는 산지오베제가 재배된다. 게다가 포도밭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 햇빛을 듬뿍 받게되는 구조라고.

루체는 이태리어로 태양, 델라 비체는 포도의 빛이라는 뜻이다. 풍요로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포도가 떠올랐다. 포도 알알이 저마다 응축에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인지 루체 BDM은 단일 포도종 100%로 만든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죽과 장미, 과실류, 커피, 타바코, 허브 등의 다채로운 아로마와 긴 피니시가 특징이며 무엇보다 세련된 산미와의 균형이 뛰어난 와인이다. 흔히 BDM 와인 하면 떠올리는 짙은 탄닌과 높은 알콜, 폭발적 스케일이 아닌 오랜 세월 몸에 배인 우아함이 깃든, 과한 화려함은 다소 절제한 지적인 귀부인 같은 와인이었다. 뭐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사람은 특별한 장식이 필요없는 법이니까. 그러 담고싶은 와인만이 아닌 닮고싶은 와인이었달까.

그로부터 3년이 더 흘렀다. 당시 루체 델라 비테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속으로 되뇌였는데 모르겠다, 그 후 얼마나 내가 결심한 삶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지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기 위해선 햇빛이 고르게 퍼지는 곳으로 나를 옮기는 여정이 필요하다. 아마도 나는 그 빛의 장소를 향해 열심히 가고있는 중이라고, 그렇게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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