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대에게 관심이 생기면 질문을 퍼붓는 타입이다.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애정이 깊어지는 기분이 든다. 뭐가 먼저고 뭐가 나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질문은 내 애정의 징표라 할 수 있겠다. 당시 한창 썸 단계에 있던 G에게 이 말을 하자, 그가 반색하며 말했다.
“어, 나도야! 어떤 사람들은 그게 취조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하던데. 네가 나랑 같은 타입이라서 다행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G는 정말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영화 취향은 어떻게 되는지, 무슨 색을 좋아하며, 내향적으로 보이는데 활동적인 취미가 있긴 한지……
그러니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질문하고 답하길 반복했는데도 질문이 끊이지 않았으니까. 미리 질문을 준비할 필요도 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매번 궁금한 점이 새롭게 생겼다.
와. 이렇게까지 대화가 편한 상대가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여태껏 대화를 나누며 설렘을 느낀 상대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편안함을 느낀 상대는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좋아한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G는 마치 거울로 본 나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랑 닮은 사람이 있는지 감탄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전까지 만난 사람들에게서 느낀 것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닮은 탓에 설렘과 긴장의 강도는 높지 않았지만,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기대감이 있었다.
G라면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답지 않게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거울로 본 나만큼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G와 나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볼 기회가 생겼다.
“어땠어? 재미있었어?”
“난 재미있게 봤어.”
“그렇게 말고. 뭐든 괜찮으니까 주절주절 말해 봐.”
이젠 질문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하고 조용히 웃었다. 평소엔 아무리 감상을 요청받았다 해도 지나치게 말이 길어지는 기분이 멋쩍어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 말을 고르곤 했는데, G 앞에서만큼은 정말로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떠들어도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세상의 틀 밖으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강요받은 선택지에 대해 생각해 봤어. 하지만 생존과 연명은 다른 의미지. 또 둘은 사실 정반대의 인물인데 그러면서도 서로 보완하고 위로해 주는 관계야. 그래서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우정이란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했어. 재희가 결국 결혼 대상으로 선택한 상대도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었잖아.”
내 말에 G는 당황한 듯했다. 역시 말이 너무 길었나? 후회하는 순간, G가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감상 포인트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난 영화를 보면서 두 번 반성을 했거든. 첫 번째는 이러다 둘이 사랑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둘이 우정이 아닌 사랑을 하며 같이 사는 엔딩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때. 두 번째는 재희의 인생에 대해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말을 얹고 있었을 때. 이건 결국 재희가 살아가며 스스로 결정한 선택의 결과가 아닌가? 너무 가볍게 막살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뒷말도 나올 테고 추후에 문제가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를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깨닫게 된 거야. 영화에서 비판하고 깨달음을 주고 싶어 한 색안경 쓴 사람이 나였다는 걸.”
나도 당황했다. G의 말대로 나와 G의 감상 포인트가 많이 달랐다. 정확히는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느낀 위치가 달랐다. G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네 감상은 좀 논문 같아.”
논문이라니.
잠시 멈칫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도. 그의 입장에서 내 감상은 감상이라기보다 분석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그의 감상이 무언가 부족하다 느낀 것처럼.
영화를 볼 때 G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타입이었고, 나는 이야기가 결국 무얼 말하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타입이었다. 서로의 감상을 교환한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G와 나는 결코 닮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라면 모를까. 그 깨달음이 신호탄이라도 된다는 듯, 그때부터 나와 G의 차이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