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거울의 비밀(2)

by 자하

“넌 너무 돌려 말하는 것 같아. 네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어.”


G가 말했을 때 나는 당혹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를 수가 없었다. 단언컨대 나는 결코 돌려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만큼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말하기든 글쓰기든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를 선호한다. 뭐가 됐든 명확하게 하지 않고 대충 뭉뚱그리는 걸 답답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G의 말이 당황스러운 한편 억울하기까지 했다. 나는 내 기분이든 상태든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해 왔으니까.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 짜증 나면 짜증 난다 말해줘야 내가 알아듣고 고치는데 넌 말을 안 하잖아.”

“내가 언제?”


황당한 말의 연속이었다. 실제로 서운한 점이나 불편한 점을 몇 번인가 말했던 건 내 쪽이었다. 오히려 G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기분이 상하지 않으니 문제가 있으면 말해달라 요청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지난번에 말한 적 있잖아? 그래서 너도 조심하겠다고 했었고.”


나는 그가 카톡으로 말을 걸어 놓고 막상 답을 하면 톡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돌려 말했지.”

“내가 언제?”


내가 그날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네가 불러서 답을 한 상황이잖아. 난 네 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 그런데 너는 말도 없이 낮잠을 몇 시간씩 자고 와서 뒤늦게 잤다고 말하거나 심지어는 왜 답이 늦어졌는지 설명조차 안 하잖아.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무조건 칼답을 해 달라는 게 아니야. 기다리는 마음을 좀 생각해 달라는 뜻이야.”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G가 비교적 감정적으로 둔한 편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G는 mbti 식으로 말하자면 대문자 T다. 이 상황에 내가 왜 불만을 느꼈는지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화가 나고 답답하지만 참자. 잘 설명해서 내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 알려 주는 거야.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돌려 말한다는 거야. 화가 난다, 속상하다 말하면 되는데 애매하게 말하잖아.”


머리가 멍해졌다. 그건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포인트였다.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해하기 쉽도록 원인과 결과를 연결해서. 그런데…… 생각해 보니 G의 말마따나 한 번도 화가 난다거나 속상하다거나 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쓴 적이 없었다.


“그럼 그때 내가 한 말에서 감정이 안 느껴졌다는 거야?”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말문이 막혔다. 그럼 지금껏 내가 어떤 기분으로 이런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한 거야? 하지만 물을 수는 없었다. G가 이미 눈으로 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했잖아. 네 기분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그날 내가 느낀 건 절망이었다. 내 진심이 G에게 전혀 닿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정확하게 말하기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감정이 단순히 속상하다거나 화가 났다는 납작한 표현으로 설명되길 바라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무력감과 외로움, 슬픔, 답답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면 단 한 가지 감정만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줄줄 늘여서라도 내 기분을 설명하려 시도했다. 그 상황에 이입해 내가 느낀 감정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아. 이래서 돌려 말했다고 하는 거구나.


나는 곧 내 화법의 비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정확하게 전달하려 한 시도가 누군가에겐 돌려 말하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불현듯 [대도시의 사랑법]을 본 뒤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G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나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집중했던.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G에게는 정확한 말이 아닌 직접적인 말이 필요했다.


그와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어긋나 있음을 너무나도 강하게 느꼈다. G와 만나며 나는 악의 없이 상처받곤 했다. 그 역시 나의 말을 해석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생각해 보면 거울은 정확히 같은 것을 비추지 않는다. 뒤집어서 보여 주지. 아마 나는 G에 대해 몇 번인가 더 얘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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