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지’ 않으면, 새로운 모든 것은 불편해진다.
인생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매순간 끝까지 책임지며 살아가기엔,
이 세상도 타인도 너무도 복잡하고 많다고 느껴지고
그저 대충 지금 만들어진 나에 익숙해져 살아가는 거지.
책임지기 싫어 매번 피하다가도,
‘이건 좀 아니지’ 싶을 땐
한마디 던져보기도 한다.
나도 다 좋자고 나름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상대가 죽자고 달려들면
‘아니, 나도 배려해서 말한 건데 자기 생각만 하네?’
그제야 비로소 내 의견을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난 무언가에 꽂혀 전체를 볼 수 없기에,
서로 감정 상할 일만 남는다.
묵묵히 침묵할 수 있는 자는
정말 자신의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뿐이다.
가만히 침묵하는 게 모두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끝까지 중도의 침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침묵은
무책임이자, 방임이자, 방조이다.
스스로 입을 다물고 성군이라 생각하는 자는,
성군답게 끝까지 입을 닫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깨어 있는 채로 전체를 보기엔’
내가 너무도 깨어 있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기엔
인생이 너무도 불분명하고 또 불안하다.
삶이 언제부턴가 그렇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다 어찌저찌 결과물이 나오면,
‘아, 진짜 뿌듯하다.’
‘다음엔 정말 나를 가로막는 것들 이겨내며,
좀 더 열심히 참여해야지. 이렇게 뿌듯한데.’
그렇게 다짐하지만,
그 관성은 쉽게 어디로 가지 않는다.
비난도, 비평도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깨어 있지’ 않으면,
새로운 모든 것은 불확신으로,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무한한 이 현재에서
새로움을 귀찮고 불편함으로 느낀다는 것은,
끝없이 스스로 고통받기를 자청한 셈이 된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면,
왠지 모르게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멀리 떨어져서 바라봐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