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고의 이중성을 말하다.

by 서고독

우리는 인간이기에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사실.

그것은 삶의 활력이 되지만,

동시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고는 원동력이자, 유한함의 시작

사고는 우리의 힘이지만,

바로 그 사고가 우리에게 ‘유한함’이란 고정을 만듭니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은,

곧 그걸 해야만 한다는 욕구를 낳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하기 싫은 일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것은 우리가 어떤 기준에 의해 '편향'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

무언가 ‘옳다’고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옳다고 믿기에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죠.

이처럼, 하고 싶은 말과 일 모두

결국엔 ‘사고’가 만든 '기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사고는, 우리 삶의 유한함을 만듭니다.

유한함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고,

이 삶 안에는 ‘내 것’이라는 당연함이 자리 잡게 됩니다.

내 가족, 내 재산, 내 집, 내 권리 처럼 말이죠.

사고의 본질은 ‘무한함’인데, 동시에 사고는 ‘유한함’을 낳습니다.

우리의 본능은 끝없이 유한함을 만들어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익숙한 유한함조차도 지겨워져 ‘새로움’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우리 존재의 본질이 무한함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진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사고와 본능이 만들어낸 유한함만을 따라 산다면,

우리는 스스로 유한함의 채바퀴 위에 올라타게 되는 셈입니다.

유한함을 품을 수 있을 때, 무한함이 열립니다.

유한함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이 욕구는 어떤 기준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자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 자각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그 유한함조차 무한함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순간’,

무한한 지금-여기와 만나게 됩니다.

여기, 바로 지금 이 자리.

이곳은 사고가 만들어낸 과거의 후회,

미래의 걱정과 두려움이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무한함이 펼쳐진 진짜 무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사진을 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