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할 수 있기에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사고할 수 있다."
‘인간이기에 사고할 수 있다’는 표현이 훨씬 더 넓은 범위를 가진다.
인간은 사고 외에도 무한히 존재할 수 있다.
만약 뇌의 일부에 문제가 생겨 사고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반면 ‘사고할 수 있기에 인간이다’는 말은,
‘사고’라는 것이 현재로서 인간만의 ‘고유성’이며,
그 사고라는 능력을 수행하는 존재가 오직 인간뿐이라는 전제에서 성립된다.
보통 우리는 사고를 기술적 역할로 보며 위 글 내용을 '분류'하고 끝낸다.
그러나, 위 문장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사고는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원초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이 같은 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 샘이 바로 사고다.
따라서 ‘사고할 수 있기에 인간이다’라는 말은 기술적으로만 보았을 땐,
‘사고’의 고유성이 인간만의 것임을 뜻하며,
즉, 사고하는 자는 인간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본질은,
분류라는 표면의 근원에 있는
말 그대로 ‘사고할 수 있기에 인간이다’라는 문장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원천인 '사고' 그 자체에 있다.
사고를 담아내는 것이 언어이고,
그 언어는 지금 이렇게 글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사고할 수 있기에 인간이다’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분류의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그 본질인 사고가 언어를 불러오고,
그 언어를 해석하고 있는 나 자신이
결국 사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고는 언어가 되어 글로 나타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사고하고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