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재는 무한함과 유한함의 균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주로 유한함을 쫓으며 살아간다.
무한함은 ‘회복’과 ‘준비된 상태’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회복과 준비가 된 상태는 곧 균형 잡힌 상태이다.
‘존재’는 생명이며,
살아있다는 것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 순간’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곧 생명이다.
예를 들어, 평평한 땅이 서 있는 나무는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져서는 설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땅이 경사라면,
그 경사에 맞게 균형을 잡고 자라야 할 것이다.
비바람이 불고 해충이 생겨도
나무는 그 순간마다 균형을 찾아내려 한다.
이처럼 균형은 존재가 살아 있기 위한 본능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 또한 다르지 않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서는 여러 작용이 일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상 상태로 복원하려 한다.
육체적인 긴장이나 운동을 할 때도 우린 회복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
근육의 통증을 회복하고,
몸을 다시 정상 상태로 돌리려는 순환이 작동한다.
생명과 관련된 ‘균형’은
사고로 접근하기 어려운, 본능이자 존재 그 자체이다.
우리가 우리의 균형과 존재를 깨닫기 어려운 이유는,
머리로 나오는 사고를 절대화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고의 유한함에 치우쳐
눈에 보이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그 유한함으로 무한함을 탐구했기에
오늘의 첨단 기술과 문명이 탄생했다.
두 가지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무한함을 유한함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우리를 성장이란 무한함에 이끈다.
그러나 무한함을 유한함으로 제한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무한한 존재를 살아내는 길이며 내가 말하는 방향이다.
존재는 곧 회복이며 균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을 지금의 ‘중립’ 상태로 회복시키기보단,
유한함을 쫓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데 익숙하다.
운동선수가 가장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순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회복된 상태일 것이다.
훈련이라는 작용과 회복이 함께 쌓여 실력이 된다.
그리고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은 그가 가장 회복된 상태에 있을때 일 것이다.
육체와 정신, 그 모든 회복에 앞서는 것은
의식 즉 ‘나’라는 존재의 회복이다.
육체가 힘들고 정신이 지쳐도,
나의 의식이 회복되어 있다면
그 순간은 그대로 나의 삶이 된다.
그때의 나는
머물 수 있는 존재,
가장 최선의 회복된 나로 존재하게 된다.
내가 이 순간에 머물 때,
모든 것은 최선의 회복 상태가 된다.
그때 우리는 존재하며,
그 존재를 통해 세상에 우리를 표현한다.
균형을 사고하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능이자 한계이다.
생명은 균형이며,
그 균형은 곧 무한한 존재이다.
보이지 않는 무한함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보이는 유한함만을 쫓으며 그것을 무시할 필요도 없다.
이 순간,
내가 가진 유한함으로 무한함을 자각하고,
그 무한함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 곧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