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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Apr 25. 2020

구체적인 행복

2020년 4월 25일


아침 6시 40분.

온 동네 귤즙 같은 볕이 가득 찼다.

거실로 상큼한 볕이 콸콸 들이친다.

신선한 단내가 거실을 꽉 채웠다.

가만히 서서 볕을 쬐었다.

아름답고 무탈한 아침.

고요한 행복이다.



읽기를 미뤘던 책을 집어 들었다.

침대에 엎드려 한 장 한 장 읽는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그새 오동이(같이 사는 고양이)가 책과 얼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몸을 구겨앉더니 이내 팔에 고개를 괴고 자는 척이다.

이마를 오동이 정수리에 슥슥 비빈다.

뒤통수 냄새를 킁킁 맡으니 고갤 들어 날 본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연두색 눈망울.

서로 오래 바라보다 오동인 다시 잠들고 나는 책을 읽는다.

이토록 구체적인 행복.

매우 흔한 행복.



우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거칠게 뜯겨나간 마음의 단면을

한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일.

쓰리고 따가운 마음 구석을

가만히 다독이는 일.

가슴에 담으면 독이 되는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울어야 한다.

아주 실컷 우는 게 좋다.

어금니 으깨며 참지 말고

끄억끄억 소리 내어 펑펑 울어야 한다.



행복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벤치에 혼자 앉아있다.

곁에 앉아 얼굴을 살펴보면 찰나에 많은 감정이 스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결같다.

심심하고 담담하다.

행복의 표정이 그러한 걸 자주 잊는다.


행복이 사라진 곳에 행복이 있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그것 역시 종종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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