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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Jun 13. 2020

얘도 저고요, 쟤도 저예요.

2020년 6월 13일


널 만나면 언제나 힘을 얻었어.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도 좋고, 희한하게 웃긴 농담도 좋고.

너도 알잖아, 요즘 내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그래서 톡해도 될 걸 괜히 전화하고 그랬어.

이렇게 만나서 실컷 이야기하니까 더 좋다.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의 목소리가, 아니 정확하게는 응대에 힘이 넘쳤다니 신기하다.

하긴 내가 나한테 전화한다고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같다.

차분하게 네,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잘 지내셨죠? 저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라고

응대하면 될 전화도 아이고~네네, 그럼요! 으하핫! 아주 그냥 잘 지내다 못해 힘이 막 넘친다니까요!

하면서 한두 번은 웃음소리를 낸다.

게다가 한 톤 높여진 목소리에 소리도 살짝 키워서.

여기저기 주워들은 이야기로 농담 섞어 말을 하니 긴장도 풀린다.

전화 속에서의 나는 분명, 힘들 때 찾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충분히 '무난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은 으레 묻곤 한다.


어디 아프세요?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파? 무슨 일 생겼어?)


이런 패턴.

전화받기 전과 받는 동안, 그리고 끊고 나서의 온도차는 냉탕, 온탕 버금가는데

그런 괴리가 우습기도 하고 이질감도 느껴져서 한동안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진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상대를 기만하는 건 아닌가 염려하기도 했었다.

뭐든 과잉되면 우스워진다는 게 이런 것.

전화받고 끊는 것으로 진실이다, 기만이다, 그런 생각을 줄줄 그것도 혼자 하는 것 말이다.

스스로를 (쓸데없이) 괴롭히는 일도 무척 예민하고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문득 나의 진짜 모습은 뭘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반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라는 - 추상적이어서 짜증 나는 말의 허울을 확 벗겨내고 싶었다.

앞으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애당초 지워내야지, 싶었다.

그 끝에 떠오른 에피소드가 전화응대였다.

응대라고 하니까 서비스하는 것 같은데, 아마 그런 마음도 있을 거다.

나의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 밝고 기운찬, 그래서 의지처가 되어주고 싶은 -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이것도 표면적인 마음.

더 깊은 심층에는 '날 떠나지 마. 떠나지 못하게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인지도 모르지.


어차피 '진짜'라는 건 정의할 수 없다.

변화무쌍하니 붙잡을 수 없고 설명할 길 없어 불안한 마음에

틈만 나면 '진짜 나는 뭐야?'라고 답 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거라고.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진짜'라고 할 수 없다면 '가짜'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러니 진짜니 가짜니 스스로에게 하는 그 질문, 쓸모없다.

버려도 좋다.



6월 13일 토요일 아침 하늘의 구름은 층층 구름.

페스츄리가 떠오른다.

가볍게 아침 먹고, 산책이나 가야지.

오늘은 일을 좀 적게 하고 일찍 백수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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